포럼뉴스

과학 앞에 완전범죄는 더이상 없다

최종수정 2009.04.15 16:21 기사입력2009.04.15 15:50
글씨크게 글씨작게 인쇄하기
범인라고 확신하고 추적하던 용의자의 DNA가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형사는 용의자를 더 이상 잡아둘 수 없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현 수준의 과학수사 기법이라면 진범을 잡을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을 나타내곤 했다.

지난 1월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혐의를 밝히는 데도 과학수사가 결정타가 됐다. 강씨의 점퍼에서 발견된 혈흔에서 실종된 주부 김씨의 DNA가 발견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분석 결과에 결국 강씨는 두손을 들고 범죄사실 일체를 자백했던 것이다.

최근 장자연 리스트사건에도 DNA 분석 등이 도입되면서 첨단 과학수사 기법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과학수사대를 다룬 미국 드라마의 인기도 이같은 관심에 한 몫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드라마에서 보듯 미세한 흔적만으로도 범인을 척척 잡아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점을 풀어주고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행사가 최근 열렸다.

◆범죄수사 과학화 심포지엄 열려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는 14일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대검찰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기업체 등 범죄수사 과학화 관련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범죄수사 과학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 2006년부터 교과부 지원으로 추진중인 '범죄수사 과학화 연구사업'의 연구 성과를 중간 점검하고 향후 연구개발의 방향 및 수사 현장 적용까지의 연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현주소와 발전방향을 한 눈에 확인 할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심포지엄에서는 '흔적증거물 및 마약', '과학수사와 유전자', '디지털 범죄수사'등에 대한 전문가 발표와 함께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돼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흔적만으로 범인을 잡는다
과학수사에 이용되는 몽타주시스템

범죄 현장에 남은 흔적만으로 범인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면 수사는 한결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또 다른 추가적 피해도 조기에 예방할 수 있다.

이같은 수사 일선의 요구에 부응해 마약수사분야 연구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강봉 박사팀은 최첨단 분석 장비를 이용해 차량을 이용한 범죄, 문서위조, 불법 마약 사용 등 다양한 범죄에서 생겨나는 흔적 증거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흔적 증거물 만으로도 유사한 사건과 관련자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체계화한 것이다. 또한 이 박사팀은 마약수사에 있어서 소변, 머리카락, 손톱 및 발톱에서 다양한 종류의 마약 성분을 검출하고 복용시기도 예측해내는 기법을 개발해 첨단수사의 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전자 검사 더 빨라졌다
지문 채증 장비
과학수사에서 가장 효과적인 증거가되는 것이 바로 유전자다. 범인이 현장에 남기는 유전자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죄를 자백한 것도 DNA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1980년대 후반만해도 유전자 검사를 위해 미국까지 샘플을 보내야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유전자 검사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유전자 검사분야 연구책임을 맡고 있는 서울의대 이숭덕 박사팀은 "개인식별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고 과학수사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이 박사팀은 유전자 추출 과정을 생략하고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반응용액'을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유전자 검사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첨단 디지털 기술 이용한 과학수사
거짓말을 탐지하고 컴퓨터 이용 범죄를 막는 데는 첨단기술을 활용한 수사기법이 주로 사용된다. 범죄 심리와 생체신호분야의 연구를 맡고 있는 중앙대 이장한 교수팀은 비언어적 행동이나 생리적 반응을 탐지하는 통합 거짓말 탐지기를 연구하고 있다. 이 박사팀에 따르면 용의자가 거짓말을 하면 죄책감, 불안감 등을 느끼게 된다. 이에 따른 코와 눈주위의 안면온도 변화, 심장박동과 호흡, 눈동자 움직임 등 얼굴과 신체의 미세한 변화와 움직임까지 탐지한다면 쉽게 거짓말을 잡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컴퓨터를 이용한 범죄 연구 분야를 맡고 있는 고려대 이상진 교수팀은 개인 및 기업 범죄 수사에서 활용될 수 있는 컴퓨터 및 휴대폰 등의 디지털 데이터 분석 기술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이 교수팀은 휴대폰 사용 정보나 데이터베이스 정보 등 디지털 데이터를 자동으로 파악하고 이로부터 자료를 추출ㆍ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이용하면 휴대폰 사용자 및 시스템 관리자의 증언을 검증할 수 있고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용의자에게는 증거자료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