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모델 유지태를 만났다. 배우이기도 하고 영화감독이기도 한 유지태가 모처럼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섰다. '남부럽지 않은 기럭지'를 자랑하는 유지태는 수트를 빼입고 '남부러운 간지'를 과시했다. 의류 브랜드 헤리스톤의 전속 모델인 그는 경기도 파주출판도시에서 광고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 "윤진서, 예전엔 물음표 지금은 느낌표"

유지태는 최근 영화 '비밀애'를 촬영 중이다. 쌍둥이 형제와 사랑에 빠진 여자의 이야기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남매로 출연했던 윤진서와 이번에는 부부지간으로 호흡을 맞췄다.

"진서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열심히 내 자리를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서가 남자배우가 아닌 게 다행이죠. 하하. 농담입니다. 예전엔 물음표 같은 배우였다면 지금은 느낌표 같은 배우라고 할 수 있어요."

얼마 전 유지태는 윤진서와 극중 소품용으로 웨딩 화보를 촬영하며 모델다운 '포스'를 뿜어낸 바 있다. 지금 바로 결혼식장으로 달려가도 손색 없는 품새를 자랑하지만 그는 "아직 결혼할 때가 안 됐다"며 말을 아낀다. 바쁜 일정 때문에 서로 만날 시간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 "'스타의 연인', 실패도 관망할 줄 아는 자세 배웠죠"

새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 모델 유지태는 어느새 온데간데 없고 배우 유지태가 앉아 있다. 그의 최근 출연작은 TV드라마 '스타의 연인'이다. 한류스타 최지우와 함께 출연한 이 작품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조용히 종용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덤덤했다.

"드라마를 했기 때문에 오히려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영화를 찍을 땐 너무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았나 생각해본 계기가 됐죠.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미묘한 것까지 신경 쓰다 시간을 너무 허비한 게 아닌가 되돌아보게 됐어요. 드라마 현장을 경험하면서 마음을 비우는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영화와 달리 시청률을 지켜보며 연기를 해야 하는 어려움도 그는 '스타의 연인'에 출연하며 처음 알게 됐다. 유지태는 "시청률이 중요한 이유를 알게 됐다"며 "시청률이 좋지 않으니까 현장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치더라"라고 말했다. "실패도 관망할 줄 아는 자세를 배웠다"는 그의 눈빛에서 한 걸음 성숙한 배우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 "단편영화 연출작, 영화제 수상이 오히려 민망"

모델에서 배우로 건너온 유지태는 이제 영화감독으로 변해 있었다. 다재다능한 그의 면모는 최근 해외 단편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단편영화들에서 잘 드러난다. 오는 30일 홍콩에서 개막하는 5회 인디판다국제단편영화제는 그의 단편 '자전거소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나도 모르게' '초대'를 특별상영 섹션에 초청했다. 최근작 '초대'는 11회 일본 쇼트쇼츠아시아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그는 얼마 전 일본을 다녀왔다.

유지태는 일본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지 않은 게 더 다행"이라고 아이러니한 말을 던졌다. "수상을 하면 오히려 더 민망하다"는 게 이유다. 아직 단편영화 감독이니 너무 과대평가되는 것보다는 좀더 내공을 쌓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배우가 단편영화를 연출해서 수상하면 겉모습만 화려해 보일 수 있으니 "수상보다는 특별언급 혹은 특별상영 초청이 더 큰 상"이라고 그는 말했다.

유지태는 여전히 '취미로 영화를 연출한다'는 주위의 편견과 싸우는 중이다. 뮤직비디오 연출료나 영화제 수상 상금, 케이블 판권료 등을 다시 제작비로 충당하는 자주제작 방식은 배우 출신 감독 존 카사베츠를 떠올린다.

◆ 다음 단계는 성장담 그린 장편영화

감독 유지태의 다음 단계는 장편영화다. 저예산 성장드라마로 시나리오는 2고까지 나왔다. 실험적인 영화에 가깝냐고 묻자 "영화에 맞는 스타일을 구현해야 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드라마와 스토리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뻔한 결말 대신 의미 있는 결말을 만들어내고 싶단다.

마지막으로 연인이자 동료 배우인 김효진을 캐스팅할 계획에 대해 물었다. "김효진의 색깔이 맞는 작품과 캐릭터가 있다면 캐스팅하겠지만 아무 역할이나 무작정 캐스팅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그의 답이다. 서른셋의 배우 유지태는 더욱 신중하고 깊어지고 있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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