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킴 작 '빈센트 반 고흐'.

'보릿 고개'와 '새마을 운동'으로 고단했던 당시 대중들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로맨스를 자극하면서 심적 안정감과 시간의 여유를 갖게 해주었던 '부르스'(원말 블루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도시민들에게 부르스는 잊혀진 트로트 가락에 맞춰 몸을 흐느적 거리던 것이 아닌, 여전히 가슴 속에 꿈틀대는 템포이자 가락이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는 나아졌지만 고단한 삶의 농도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주대희 작 '나 삐졌어~!'.

그래서 부르스는 골목마다 넘쳐날 수록 허기진 사람들의 가슴에 난 구멍을 메워주고도 남을 것이다.

미술을 소통방식으로 해 농성사거리 일대 새로운 문화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이 기획전으로 마련한 '농성동 부르스'는 농성동 일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상을 느린 템포처럼 표현해보자는 취지다.

미술관이 소재한 '농성동'이라는 지역의 명사를 붙여 '농성동 부르스'라는 전시의 타이틀로 오는 25일부터 9월13일까지 대중의 마음을 저미게 했던 부르스가 도화지에 새롭게 표현된다.

최석운 작 '휴식'.

'농성동에서 부르스를 춥시다'라는 타이틀로 열릴 이번 전시는 상록전시관이 농성지역의 문화적 공간이자 나눔과 어울림의 공간이라는 인식을 더욱 확산시키는데 기여할 전망이다.

김일근 씨킴 정예금 주대희 최석운 최재영 허진 황정후씨 등 참여작가들도 저마다 사연많은 현대인들의 단상과 족적들을 아로새긴다.

특히 지난 2006년과 2007년 연이어 세계적인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에 선정돼 주목을 받았던 아라리오 갤러리 김창일 회장이 씨킴이라는 예명으로 참가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최재영 작 'Street'.

김 회장은 타임지 표지에 실린 빌게이츠나 고흐의 초상화 등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대상을 캔버스에 정밀하게 묘사시킨 후 토마토를 던져, 뿌리고 으깨고 더럽히는 작업을 거쳐 탄생시킨 작품을 선보인다.

또 최재영씨는 인간들을 위한 도구이자 수단인 인형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들의 욕망과 위선, 허구성을 이야기하고 주대희씨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라는 코드를 통해 꾸미지 않은 순수함과 더불어 잊혀져가던 유년시절 기억을 회상한다.

이어 김일근씨는 ‘탁지’라는 종이를 재료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기차를 축소한 작품을 출품하고, 정예금씨는 얇고 투명한 실크질감을 겹겹이 이용해 불꽃 투영의 현란한 발현과 대기의 흐름을 표현한다.

정예금 작 '불꽃'.

최석운씨는 궁핍한 묘사와 어눌한 표현의 말더듬이의 언어처럼 미성숙한 어린이의 손재주를 일부러 흉내내고 있고, 허진씨는 포효하는 유목동물의 이미지를 사용해 부유하는 인간들의 사회, 유목사회의 허상을 묵시적으로 보여준다.

※부르스=1950년대 중·후반 미군을 통해 서구의 사교문화가 우리나라에 이식되면서 익숙하게 됐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 '부르스'는 대중가요 타이틀로 인용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유행했던 대중음악은 템포가 느리면서 대중의 마음을 저미게 하는 선율로 구성돼 있다. 대중들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로맨스를 자극하면서 심적 안정감과 시간의 여유를 갖게 해주었다. 느린 템포에 간드러지는 색소폰 음악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에 적합했던 것이다.

광남일보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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