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

[아시아경제 고경석 기자]왕지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커다란 눈이 점점 더 커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눈이 만들어내는 표정이 보통 사람보다 최소 두 배 정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 배우는 눈만으로 웃고 화내고 사랑하고 울 수 있을 것 같다. 포커페이스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다.

◆ "뚜렷한 이목구비가 콤플렉스랍니다"

영화 '식객: 김치전쟁' 개봉에 맞춰 아시아경제신문과 만난 왕지혜는 남들이 칭찬하는 자신의 매력인 눈이 '콤.플.렉.스'라고 말했다. 단지 눈만이 아니다. 평균치보다 훨씬 작은 얼굴에 비해 뚜렷한 이목구비가 콤플렉스란다.

"이목구비가 크니까 부담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정을 많이 쓰다 보면 '오버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잖아요. 어떤 분들은 제게 얼굴을 작게 쓰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충고해 주시기도 했어요. 생각해 보면 브라운관에서 보면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왕지혜가 대중에게 널리 이름과 얼굴을 알린 건 드라마 '친구-우리들의 전설'(이하 '친구')이었다. 연기자로서 데뷔한 게 2003년이니 일찌감치 연예계에 들어선 것에 비하면 뒤늦은 유명세였다.

"처음 데뷔했던 고등학생 때는 연예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걸 지쳐서 포기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도 처음엔 사람들이 제게 예쁘다고 말하면 제가 예쁜 줄 알았죠. 그런데 무명시절을 오래 지나다 보니 이제 조금씩 알게 됐어요. 요즘엔 지하철도 자연스럽게 타고 다녀요. 지금이 훨씬 편하고 좋아요."

한때 예명이었던 민지혜로 TV드라마 '북경, 내 사랑'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등에 출연하면서, 또 여러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서 왕지혜는 배우라는 직업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 왕지혜, '친구'가 발견한 흙 속의 진주

'배우 조련사'로 유명한 곽경택 감독은 왕지혜의 숨겨진 재능을 알아보고 '친구'의 여주인공 진숙으로 캐스팅했다. 이 드라마가 높은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 있어 왕지혜의 역할이 적지 않음은 분명하다.

"'친구'에 출연할 때는 감독님이 무한한 신뢰를 주셨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성에 안 차서 운 적도 많았죠. 그렇지만 힘들었던 만큼 쾌감도 있었어요."

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

왕지혜라는 배우의 잠재력을 채 알리기도 전에 그는 새 작품에 바로 뛰어들었다. 지난해 8월 7일 '친구'를 끝내자마자 이튿날 새 캐릭터를 위한 스타일링을 마치고 9일 곧바로 영화 '식객: 김치전쟁' 현장에 투입됐다. 이 영화에서 그는 주인공 성찬(진구 분)의 친구이자 잡지사 기자 진수 역으로 출연했다.

"다른 배우들과 달리 저는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촬영에 바로 들어갔어요.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했지만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래도 빨리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죠."

◆ "언젠가는 요리사 역을 맡아보고 싶어요"

'친구'의 진숙과 '김치: 김치전쟁'의 진수는 상반된 인물들이다. 거친 인생역정을 거친 진숙과 달리 진수는 무척 발랄하고 활기찬 캐릭터였기 때문에 순식간에 다른 인물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스태프들이 봐도 불편했대요. '친구'와 달리 힘을 빼고 연기해야 하는데 얼어 있는 상태에서 연기했으니까요. 첫 촬영은 아마도 대학 입시 때보다 긴장했을 거예요."

평소 인기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이나 '헬스 키친' 같은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는 왕지혜는 "비록 요리를 직접 하는 역할은 아니지만 음식과 관련된 영화에 꼭 한번 출연해보고 싶었는데 그걸 이뤄서 정말 뜻 깊었다"고 말했다.

왕지혜는 연기와 요리, 여행을 좋아하는 스물넷의 전도유망한 배우다. 부친상을 당한 지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견딜 수 없이 힘든 상황에서도 왕지혜는 슬픔을 결코 내비치지 않았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서로 꺼내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왕지혜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긴 연기인생에서 '식객: 김치전쟁'은 단지 하나의 과정일 뿐이겠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그에겐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연인 왕지혜는 배우 왕지혜가 "어떤 배우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규정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왕지혜가 지금 거쳐야 할 과정의 핵심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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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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