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경주=박연미 기자]
"환율 논쟁은 이것으로 종식이 됐다고 볼 수 있다."

23일 오후 5시. 경주 현대호텔 내 프레스룸 단상에 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들떠있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은 이날 ▲시장 결정적인(market determined) 환율제도를 이행하고 ▲경상수지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예시적인(indicative)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국제통화기금(IMF) 지분 6% 이상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중국 등 신흥국으로 양보한다는 내용을 담은 커뮤니케(공동 선언)를 채택했다. 한 고비를 넘겼다 해도 환율전쟁의 기 싸움이 팽팽하던 시점,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였다.

당초 경주 회의를 낙관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서울 G20 정상회의를 3주 앞두고 열리는 사실상의 리허설, 안팎에선 정상회의를 앞둔 G2(미국과 중국)가 물밑으로는 접점을 찾을지언정 겉으로는 평행선을 그을 가능성이 높다고들 했다.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 조정안을 타협점으로 제시했다는 소식에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아냥이 먼저였다. '금융위기 와중 어부지리(漁夫之利)로 얻은 의장국 자리가 버겁다'는 푸념부터 'G20 무용론'에 이르기까지 정부를 잠 못 들게 하는 목소리들이 힘을 받았다.

경주 선언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피워낸 꽃이다. 9월 이후 G2의 환율전쟁이 한창 고조되던 그 때부터 청와대와 재정부·서울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가 손 발을 맞춰 만들어 낸 한 달의 드라마다. 그러고보면 윤 장관과 실무진들은 충분히 흥분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잔칫상을 물리며 잊지 말아야 할 현실은 윤 장관의 말처럼 환율전쟁이 끝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윤 장관의 종전(終戰) 선언 직후 기자회견에 나선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중국이 국제 공조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고 치켜세웠지만, 회견장 문을 나선 그는 끝내 윤 장관의 종전 선언에 동의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시장이 결정하는 환율'이나 아직 합의되지 않은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에 구속력이 없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확실한 건 IMF의 중심 축이 유럽에서 신흥국으로 움직였다는 것 정도다.

"환율전쟁은 정말 끝난 겁니까?" 돌아가는 가이트너 장관에게 다섯 차례 물었지만 그는 끝내 '그렇다'는 답변을 주지 않았다. 다만 "큰 진전이 있었다"고 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이제 20여일 뒤면 정말 서울 G20 정상회의다. 짜릿한 흥분은 잠시 접어둬야 할 때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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