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200만원 내외의 현금 담겨
재생봉투 구하기 어려워 직접 맞춤 주문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

[아시아경제 지선호 기자]"1820명에게 지급할 약36억여원의 현금을 구하라"

현대오일뱅크 재정팀에 특명이 떨어졌다. 이달 지급되는 임직원들의 월급 일부를 현금으로 전달하라는 과제가 내려졌던 것.

현대오일뱅크는 30일 서울사무소와 대산본사 임직원 1800여명에게 12월분 월급중 200만원 정도를 5만원권 현금으로 지급했다. 전체 월급에서 각자가 지급받은 봉투 속 월급을 뺀 나머지는 평소와 같이 자동이체 형식으로 임직원들에게 전달됐다.

아이디어의 출발은 지난 8월 취임한 권오갑 사장이다. 과거 노란색 재생 봉투에 월급을 담아 지급하던 방식을 재현해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자는 것. 이와 함께 권 사장이 손수 쓴 감사의 편지를 함께 담았다.

권 사장의 특명을 받은 재정팀은 고민에 빠졌다. 36억여원의 현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월급을 봉투에 담는 작업도 쉽지 않기 때문. 그러나 문제는 뜻밖의 부분에서 발생했다. 재생용지로 만든 노란색 봉투를 찾는 일이었다. '추억의 월급봉투'라는 이벤트 취지를 살리기 위해 재정팀 관계자들은 남대문 시장을 샅샅이 뒤졌다.

현대오일뱅크가 30일 추억의 월급봉투와 권오갑 사장이 직접 작성한 편지를 임직원들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재생용지 봉투를 찾지 못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재생용지를 봉투를 팔지 않아 결국 봉투 제작업체에서 별도로 제작했다"며 "봉투를 만드는데 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고 전했다.

현금은 주거래은행에서 마련했다. 해당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 서울사무소의 경우 총 인출금액은 10억원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5만원권 지폐로 2만장이 넘는 양이다. 은행 직원들조차 현장에 쌓인 현금을 보면서 "이게 10억원이래"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후문.

현대오일뱅크 서울사무소 재정팀 직원들이 은행을 직접 방문해 현금을 인출하고 봉투에 넣는 작업까지 은행 안에서 마쳤다. 이 작업에 3시간이 소요됐다. 1450여명이 근무하는 대산본사의 경우 봉투작업에만 5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공장 관계자가 전했다. 재정팀 급여담당 직원은 "이렇게 많은 현금을 다뤄본 적이 없었는데 정확한 액수를 맞춰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추억의 월급봉투'에 담긴 급여는 현대오일뱅크 사업장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30일 오전 임직원들에게 전달됐다.

월급봉투를 받아 든 임직원들은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20여년 만에 월급봉투를 받았다는 어느 부장은 "월급이 은행 계좌로 자동이체 되면서 월급날을 기다리는 설렘과 기대가 사라졌는데 막상 월급봉투를 다시 받아보니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든든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번 이벤트를 기획한 권 사장은 친필 편지를 통해 "과거 우리 부모세대들이 그러셨듯이 월급봉투의 설렘과 기쁨을 함께 느껴보시고, 퇴근 길 어깨 으쓱한 마음으로 들어가셔서 가족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라고 월급봉투 전달의 의미를 전했다.

지선호 기자 lik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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