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선우선은 웃음이 많은 사람이다. 감정을 가장하는 웃음이라기엔 이미 인상의 일부분이 됐을 만큼 자연스럽다. 해맑은 낙천성과 쓸쓸한 여운, 도시의 차가운 냉정이 뒤섞여 있다.

선우선의 영화 속 캐릭터는 극과 극을 오간다. 재벌가 여성에서 탈옥범의 여자친구인 다방 종업원, 막강한 무술실력을 지닌 인간요괴, 마약중독의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등 종잡을 수가 없다.

선우선이 이번에는 고구려의 홍일점 병사로 변신했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과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로 연이어 차가운 도시 재벌녀를 연기했던 그가 정반대의 세계로 떠난 것이다. 선우선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아시아경제 스포츠투데이와 만나 "출연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는 겁부터 덜컥 났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독설이 너무 많았거든요. 실제로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는 많이 순화됐죠. 제가 연기한 갑순이 독설을 내뿜는 장면은 한두 장면밖에 안 돼요. 시나리오도보다 살이 덧붙여져 무게감이 더 생겼어요. 욕을 해도 귀엽고 밉지 않은 캐릭터죠."

'평양성' 전투의 홍일점 병사 갑순은 신라 병사 거시기(이문식 분)와 뜻하지 않은 로맨스에 휩싸인다. 구타로 시작해 일방적 폭력으로 점철된 독특한 로맨스다. 남자배우를 때리고 또 때려야 하는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선우선은 회상했다.

"실제로 상대 배우를 때리는 연기는 처음이었어요. 죄송했죠. 첫 장면부터 제가 이문식 선배를 때려야 하는 연기였으니까요. 한 테이크로 끝난 장면이 하나도 없었으니 서로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상황이 되면 몰입해서 연기하니까 잘 모르는데 정신 차리면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가득하죠. 그렇다고 제가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요."


'평양성'을 제작한 영화사 타이거픽처스와 영화사 아침 그리고 이준익 감독이 함께하는 영화 현장은 분위기가 가족적이고 유쾌하기로 유명하다. 감독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한 가족처럼 어우러지는 현장은 선우선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현장 분위기는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영화에도 고스란히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연기할 땐 주위 사람들과 말도 안 하고 나 혼자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곤 했어요. 말을 안 하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혼란해 했죠. 나 혼자서 안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촬영하면서 많이 변했어요. 마음을 열게 됐죠."

선우선은 '평양성'을 찍으며 동료 배우들, 스태프들과 어울리며 연기하는 법을 깨달았다. 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정말 행복했다"고 거듭 말했다. 서울 태생이라 함경도 사투리를 익히는 것도 어려웠고 온몸에 땀띠약을 바르고 갑옷을 입은 채 한여름의 더위와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에게 '평양성'은 '행복한 추억'이다.

"제가 '내조의 여왕' 때만 해도 술을 전혀 못 마셨어요. 그러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 출연하며 제가 광고 모델로 출연하던 술을 조금씩 마시게 됐죠. 반병만 마셔도 취했는데 맛있더라고요. 잘 마시고 싶은데 아직은 약해요. 그래도 '평양성' 찍으면서 촬영이 끝나면 감독님, 스태프, 배우들과 식사하면서 한두 잔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어요. 너무 재미있었죠."

토끼띠인 선우선은 올해로 서른여섯번째 생일을 맞게 된다. 여배우로서 적지않은 나이지만 별 부담은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결혼 관련 질문을 별로 안 들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많이 듣게 된다"면서 "나이는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이고 밝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데뷔 초에 비하면 인기도 꽤 얻었지만 주연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한다. 이유가 뜻밖에 명쾌하다.

"요즘에는 주연, 조연 구분이 없는 것 같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조의 여왕' 끝나고 주연 제의를 한 작품도 있었죠. 그때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를 선택했어요. '평양성' 전에도 주연 제의가 있었는데 제겐 '평양성'이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기회는 얼마든지 있잖아요. 한 계단 올라가면 내려가기 힘들어지니 같은 계단에 머물러 있다가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선우선의 다음 작품은 KBS2 새 월화드라마 '강력반'이다. 강력계 팀장 진미숙 역을 맡았다. 케이블 채널의 경제 관련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선우선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결혼하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남자만 생긴다면 언제든지"라는 것이 그의 모범답안이다. 이상형은? 이준익 감독이 충고해준 "존경하고 존중할 수 있는 남자"가 그의 대답이다.



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 kave@
스포츠투데이 박성기 기자 musictok@
<ⓒ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