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최근 "독일 2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3~4%에 불과한 것은 말 그대로 스캔들"이라고 지적하고 "대기업 고위직에 더 많은 여성이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 총리인 그는 기업들이 남녀 불평등 해소를 위해 행동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변화를 강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대기업들은 10년 전부터 자율적으로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에 따라 지난 3일 가족장관이 2013년까지 2년간의 유예 기간을 둔 뒤 강제 할당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메르켈 총리가 거들고 나선 것이다. 독일 기업 이사회의 평균 여성비율은 2%(200대 기업 평균은 3.2%)로 스웨덴 17%, 미국과 영국의 14%보다 훨씬 낮다.

이런 독일 정부의 움직임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면서도 여전히 여성 인력을 푸대접하는 한국의 대기업과 이를 방관해 온 정부가 눈여겨볼 부분이다. 국내 30대 그룹 중 40%인 12곳은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최근 경제전문지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그나마 여성 임원이 있는 기업들도 최근 1~2년간 첫 여성 임원을 배출한 데 불과하다.

여성임원이 있다 해도 오너 일가이거나 디자인 등 특수직에 한정될 뿐 기업 내 실세 부서인 기획이나 재무 분야 등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임원이 창업 후 수십년 만에 등장한다고 해서 언론에 등장하는 게 한국 대기업의 실상이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3.7%에 이르고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등에서 여성합격자가 40%선을 웃도는 것과 비교할 때 대기업이 여성 인력을 푸대접한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실 남성위주 문화에 젖은 대기업 분위기와 열악한 보육 시설 등을 비춰볼 때 여성이 임원에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웃도는 등 고급 여성인력이 느는데도 여성 임원이 적은 것은 보이지 않는 차별인 '유리천장'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성 각료를 생색내기식으로 임명하는 정부도 다를 것이 없다. 3~4%인 독일의 여성임원 비율이 '스캔들'이라면 한국의 경우는 뭐라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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