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당근과 채찍, 어느 것을 활용해야 성과가 향상될 것인가? 많은 리더들이 고민하는 문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에 대해 세계 최고의 사료회사인 글로벌 기업 카길의 한국대표인 김기용 회장은 당근도, 채찍도 아닌 사랑에 바탕을 둔 조직 문화가 해답이라고 말한다.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그다음부터 조직은 자동시스템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맡은 일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직급에 따른 차별은 없다”는 카길 코리아의 조직문화에 대한 평은 분당에 있는 카길 코리아를 방문했을 때 피부로 느껴졌다. 회장 집무실 입구엔 단지 김기용이란 표지(다른 직원들과 전혀 크기나 색깔 등에서 차이가 없는)만 붙어 있고, 집무 책상 위엔 그 흔한 자개명패조차 없었다.

마침 비서가 자원봉사를 갔다며 김기용 회장은 손수 필자의 차 시중을 능숙하게 들었다. 찻물을 준비하고 끓이고 따르는 솜씨가 몸에 착 붙어 있었다. 드라마 등에서 접하는 ‘회장님’ 면모와는 거리가 멀지만, 워너비(wanna be) 리더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내내 김 회장은 차분한 어조와 몸에 익은 겸손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김 회장이 가장 신나게 목청을 높이는 토픽 역시 ‘서번트(servant) 리더십’이었다. 그와의 인터뷰 3시간은 성과를 논하는 기업가와 이야기를 나눈다기보다 인간의 구원을 다루는 목회자와 대화를 나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의 情’도 보편적 리더십

“믿음, 소망, 사랑 중 사랑이 제일”이란 성경 구절은 들어봤지만 경영자로부터 사랑이 리더십의 최고 덕목이란 말을 듣는 것은 왠지 낯설다. 더구나 세계 최고의 사료 회사로 명성을 떨치는 글로벌 기업의 김기용 회장이 그런 말을 하니 뜻밖이었다.

그는 “아무리 옳은 일을 해도 존경받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상대의 입장이 돼 감정이입을 해 그 입장에서 헤아려줘야 사랑과 존경을 받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그의 사랑의 리더십은 위기 시에 한결 힘을 발했다.

회사가 어려울 때면 오히려 사내에 MBA 과정을 개설, 직원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교육을 시켰다. 당장은 아쉽더라도 가능성이 보이고 본인이 원하면 비서를 비롯, 각 분야 인재들을 원하는 부서 심지어는 경쟁회사에 가는 것조차 허용해 커리어 개발에 도움을 주게 했다.

40대에 경영자가 돼 연장자 선배를 부하로 거느려야 할 때는 “선배님들을 모시는 것이 경영자로서 자신의 임무”라고 겸손으로 설득해 화합의 조직을 이끌어나갔다. 중국에 직원들을 파견 보낼 때는 ‘군림하기보다 존중하는’ 교육방식으로 중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모두 사랑이 바탕이 된 리더십이 아니고선 힘든 일들이었다. 정이 뚝뚝 떨어지는 한국적 정서는 조직을 이끌어나가는데 저해요소고 구시대적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김기용 회장은 이에 대해 “No”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은근과 끈기, ‘can do spirit’의 긍정성, 끊임없는 교육열 등 한국인의 저력이라고 이야기되는 이 유전자들은 “세계 최고의 글로벌기업에도 먹히는 보편주의적 리더십 요소란 게 이 최고 경영자, 구력 20년 된 백전노장 글로벌 경영자가 털어놓는 임상실험 리포트다.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짊과 의리, 신뢰와 염치, 지식경영을 주창하는 군자의 도덕주의는 오늘날 조직에서 필요한 리더십과도 배치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눈앞의 주주 이익만을 극대화하기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공동체, 구성원 등의 입장을 두루 배려하고,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성과를 도모하기 위해 교육시키고 신뢰한다는 것은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적용돼야 할 기본 덕목이란 설명이다.

그는 기업 이익을 환원하기 위해 카길 애그리퓨리나 문화재단을 설립해 축산 관련 연구 활동과 기술 개발을 지원할 뿐 아니라 전문인력 양성과 사료 산업의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카길 코리아는 세계 최고의 사료기업인 카길 내에서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수년째 아시아 1위, 세계 1위로서 변방이 아니고 허브로 주목받으며 그룹 내 ‘성공적 본보기 모델’이 되고 있다. 존경과 사랑은 성과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존경받는 기업이 되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김기용 회장의 지론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

레볼루션(revolution)이냐, 이볼루션(evolution)이냐 즉, 급진적 개혁과 점진적 진화를 논할 때 김 회장이 강조하는 말은 “더딘게 빠르다”는 천천히 정신이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서는 쓸 수 없듯이’ 리더 마음이 아무리 바빠도 구성원에 대한 설득 없이는 말짱 도루묵이란 게 김기용 회장의 평소 생각이다.

주인의식과 머슴의식의 차이는 스피릿(spirit)과 매뉴얼(manual)사고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매뉴얼은 단지 따라하고, 목표에 도달하는데 의미를 두지만 스피릿은 성패 여부를 넘어 목표 이상을 달성하고자 노력한다.

다소 더디더라도, “왜 그 일을 하는가”에 대해 목적과 가치를 스스로 분명히 할 수 있어야 구성원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병든 주인 하나를 건장한 열 머슴이 당해내지 못한다는 우리 옛말도 있지 않은가. 주인의식 스피릿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목적과 가치 중심 리더십이다.

“자기가 주인이면 즐겁고 피곤한 줄 모르게 돼 있습니다. 그 주인의식 에너지가 미래를 밝게 보고 계속 발전할 기회를 갖게 하지요.” 리더가 개혁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구성원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은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단 설득에 성공하면 가속도가 붙기 때문에 의사결정은 톱다운(top down)보다는 버텀업이 결합되는 게 궁극적으론 빠른 길이다. 리더가 “나를 따르라”고 방향을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명령하면 구성원은 표면적으로는 따를지 모르지만 위기 때마다 반대와 불평이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조직문화로 정착되지 못한 채 모래성으로 무너지거나, 눈치를 보아 과거로 회귀하게 되는 일시적 개혁으로 그치게 된다. 김 회장은 “리더십은 구성원의 마음을 얻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비전과 신뢰, 구성원 존중이야말로 자발적으로, 그리고 목표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키워드요, 조직의 성공DNA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기용 회장의 만만디(천천히) 리더십이 초반엔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성과를 더 빨리, 더 많이 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주인의식, 스피릿의 고양 덕분이다. 이는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경험과 실천으로 입증하고 실천한 실증사례란 점에서 한결 울림이 크다.

실제로 카길 코리아에선 현장의 계약직 노동자까지도 예외 없이 모두 리더십교육을 받는다. 전 사원이 모두 리더이고, 혼자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조직과 서로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각 자신의 분야 최고 책임자로 생각하고 존중하고 의견을 물어보고 반영해주는 것도 카길 문화의 특징이다.

“당신이 이 분야에선 사장입니다”란 존중이 있기에 말단에서 임원까지 모두 사장 수준에서 각각 일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장 책임자 외에 품질관리 책임자가 별도로 없다. 현장에 있는 담당자가 스스로 만드는 제품이 제대로 됐나를 판정하는 총제적 관리시스템 제도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과 영혼을 실어 전력투구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김 회장은 “일을 해가면서 우열은 있지만 추구하는 비전이나 목적, 가치가 같으면 그 사람의 역량만큼 발현하고, 각각 능히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김성회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일보>에서 활동한 기자 출신의 리더십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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