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시즌 초반 안지만이 잘해줬고 후반기에는 덕 매티스, 저스틴 저마노가 호투를 해줬다. 오승환, 최형우, 김상수, 진갑용도 모두 제 몫을 했다. 또…”

류중일 삼성 감독의 입은 마를 겨를이 없었다. 선수단의 이름을 한 명씩 불경 외듯 나열했다. ‘올 시즌 수훈선수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었다.

올 시즌 표방한 소통과 믿음의 야구는 금자탑으로 연결됐다. 삼성은 27일 두산을 5-3으로 누르고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 의미는 류 감독에게 남다르다. 단일리그로 전환된 1989년 뒤로 선동열 감독(2005년)에 이어 두 번째로 부임 첫 해 정상에 오른 사령탑이 됐다. 초보 딱지를 무색하게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삼성의 한 코치는 “형님처럼 선수들을 격려해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주장 진갑용도 “친한 형 같으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류 감독은 전형적인 그라운드의 ‘삼성맨’이다. 푸른 유니폼을 입고 선수, 코치, 감독의 계단을 차례로 밟았다. 올해로 24년째 삼성과 인연을 맺고 있다. 선수들의 장단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류 감독 스스로 “선수들과 함께 많은 생활을 해온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삼성에서 코치를 하다가 감독이 됐다. 선수들로부터 변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코치 때와 똑같이 선수들을 대했다”고 밝혔다. 시즌 전 공언한 ‘화끈한 야구’에서도 이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류 감독은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의미 없는 솔로 홈런을 때린 선수라도 늘 더그아웃 앞으로 나가 엉덩이를 두드려줬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타자들에게 주문한 적극적인 타격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삼성 타선은 볼카운트 0-3에서 다음 공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류 감독이 히팅 사인을 그치지 않은 까닭이다. 결과가 아웃이 되더라도 그는 채찍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근을 건네며 적극적인 공략을 칭찬했다. 경기에서 패한 뒤에는 늘 “감독의 작전 탓이다”라며 자신에게 책임을 돌렸다. 선수 탓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류 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소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지도자다.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눠 심리적인 부분까지 배려하려 애썼다. 이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선수시절 삼성에서 뛴 마해영 ISPN 해설위원은 “프로 감독 대부분은 선수들과 직접 소통을 꺼리지만 류 감독은 다르다. 정해진 틀에 머무는 법이 없다”며 “열린 사고방식으로 선수들과 대화를 시도해 선수단에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가져왔다”고 전했다.

세세한 배려는 시즌 도중 데려온 외국인 투수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1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지만 류 감독은 선수들을 바로 마운드에 올리지 않았다. 2군에서 공을 던지며 스스로 한국야구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했다. 둘은 성적으로 배려에 보답했다. 매티스는 8경기에서 7차례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4승(1패)을 거뒀다. 저마노도 6경기에서 5승(1패)을 올리며 삼성의 상승세에 날개 역할을 했다. 매티스는 잇따른 호투에 대해 “2군에서 한국야구를 좀 더 많이 보고 연구할 수 있던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배려는 시즌 초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장원삼, 권혁 등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투수진을 채근하지 않으며 가동할 수 있는 전력만으로 마운드를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부상 선수들에 대한 독려까지 더 해져 선수단은 여느 때보다 밝은 분위기를 내내 유지할 수 있었다.

류 감독은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삼성은 이승엽, 마해영, 양준혁이 모두 뛴 2002년이 가장 강했다. 2012 시즌, 그 이상의 삼성을 선보이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귀국을 두려워하던 초보감독의 모습은 깨끗이 사라졌다. ‘형님 리더십’ 속에 삼성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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