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근(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과감한 한 수다. 프로야구 넥센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20일 LG와의 우선협상에 실패한 이택근과 4년간 총 50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총액은 2004년 심정수(삼성, 60억 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다. 계약금 16억 원, 연봉 7억 원 등 순수 보장 금액만 44억 원. 특히 연봉은 올해 최고를 찍은 김동주와 같은 수준이다. 이택근은 스포츠투데이와의 전화 통화에서 “생각 이상으로 계약을 잘 한 것 같다”며 “100% 이상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넥센은 모기업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타 구단들과 달리 70여 개 기업과의 스폰서 계약을 통해 운영된다. 많은 야구 관계자들이 이번 대형 계약에 놀라움을 나타내는 이유다. 넥센이 많은 지불하면서까지 이택근을 영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물론 여기에서는 그림자도 함께 발견된다.

▲ 타선·수비 더욱 탄탄해졌다

올 시즌 넥센은 꼴찌였다. 51승 2무 80패(0.389)로 승률 4할을 넘기지 못했다.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타선. 팀 타율은 2할4푼5리로 최하위였다. 7위 한화(.255)보다 1푼이 더 모자랐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시즌 중반 송신영, 김성현을 LG에 내주고 데려온 박병호가 천군만마와 같은 역할을 해냈다. 그는 66경기에서 홈런 13개를 치며 넥센의 4번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김시진 감독은 ‘2011시즌 가장 큰 소득’으로 주저 없이 박병호를 손꼽았다. 이는 최근 코리 알드리지와의 재계약 포기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구단 관계자는 “박병호의 선전으로 외국인 선수 영입의 초점을 모두 투수 쪽에 맞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택근의 가세로 중심타선은 한결 더 탄력을 받게 됐다. 이택근은 올해 타율 2할9푼7리 4홈런 10도루를 기록했다. 부상에 시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난한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연속 타율 3할 이상을 남겼다. 구단 관계자는 “최근 부상을 털어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더 나은 성적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시진 감독은 올 시즌 개막전에서 코리 알드리지, 강정호, 송지만 순으로 중심타선을 짰다. 4번을 담당했던 강정호는 적잖은 부담에 시달리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김시진 감독은 시즌 중반까지 해답을 찾지 못했다. 39살의 송지만이 5번을 맡았을 만큼 마땅한 대체 요원을 발견하지 못한 까닭이다. 내년은 다르다. 박병호의 가세에 이은 이택근의 영입으로 타선 구성에 숨통이 뚫렸다. 이택근은 박병호와 강정호 앞에서 3번을 칠 수 있는 적임자다. 공을 맞추는 능력은 물론 주루 센스가 탁월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2009년 43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출루와 함께 빠른 발로 상대 배터리를 괴롭힌다면 박병호에게 보다 많은 정면승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상대 투수들은 강정호, 유한준, 송지만 등이 그 뒤를 버틴다는 점만으로도 적잖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김시진 감독의 함박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하나 더 있다. 유한준의 외야 공백 해결이다. 올해 타율 2할8푼9리 54타점으로 맹활약을 펼친 유한준은 10월 6일 오른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았다. 복귀에는 8개월가량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러나 김시진 감독은 단호한 어조로 “유한준을 개막전에 지명타자로라도 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택근의 가세로 외야 수비의 걱정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택근의 주 수비 포지션은 중견수와 1루수다. 이 가운데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위치는 외야다.

▲ 이상적인 리더 체제 유지

올해 넥센의 주장은 강병식이었다. 성적은 다소 저조했다. 77경기에 출전해 타율 1할7푼4리 2홈런 17타점을 기록했다. 주장은 실력으로 부여받는 감투가 아니다. 그러나 일부 관계자들은 “강병식이 조금 더 많은 경기를 출전해 제 몫을 해냈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더 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불안요소는 비슷한 차원에서 하나 더 있다. 선수단은 올 시즌을 끝으로 상징적인 리더를 떠나보냈다. 이적 없이 18년을 함께 해온 ‘캡틴’ 이숭용이다. 팀의 1루를 꿰찬 박병호의 선전을 바라보며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냈던 자신의 빈자리를 메울 적임자를 묻는 질문에 강정호를 꼽으면서도 “사실 (이)택근이나 (정)성훈이가 뒤를 이을 것으로 생각했다. 모두 LG로 떠나 아쉽다”고 말했다. 팀의 맏형이 된 송지만의 의견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차기 리더라고 생각했던 택근이가 LG로 이적한 것이 많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트레이드에 대한 아쉬움은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택근은 넥센 선수들 사이에서 살림꾼으로 통한다. 적극적인 성격으로 궂은일을 도맡으며 선수단의 융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받았다. 유한준은 “택근이 형은 선수단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믿음직한 선배”라며 “행동 하나하나가 후배들에게 모범이 된다”고 전했다. 2년 동안 함께 생활했던 LG 선수들의 의견 또한 다르지 않다. 한 선수는 “선배인 내가 봐도 후배들을 이끄는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탁월했다”며 “통솔력과 붙임성 등이 타고났다”라고 말했다. 다른 선수는 “구단이 꼭 잡아주길 바랐는데 너무 아쉽다”며 “새로운 정신적 지주를 잃게 된 기분”이라고 전했다. 이택근의 살림꾼 기질은 지난 2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가진 하일성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의 강연을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이택근은 매일 새벽 각 선수들의 방을 돌아다니면서 에어컨을 껐다. ‘선수가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데 새벽에 왜 남의 방을 돌아다니느냐’며 야단을 치자 그는 ‘에어컨을 켜 놓고 잠을 자면, 다음날 몸이 무거워져서 경기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날씨가 후덥지근해서 에어컨을 틀어 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이를 걱정하고 바로 실천에 옮긴 것이다. 당시 이택근은 ‘국가대표에 뽑혀서 자랑스럽지만 후보여서 팀에 기여하는 것이 없다. 팀에 어떻게 기여할까를 생각해 보았더니, 에어컨을 꺼 주고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겸손해했다.”

넥센은 오는 30일까지 일본 미야자키현 휴가시에서 마무리훈련을 치른다. 한 선수는 “모두 영입을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대부분의 선수들이 택근이 형을 차기 주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택근은 누구보다 넥센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1999년 현대에 2차 3라운드로 지명돼 구단의 황금기와 몰락, 연고지 이전, 히어로즈 창단 등을 모두 경험했다. 넥센 한 선수는 “선수단이 어렵게 운영되던 시절 후배들의 동요를 묵묵히 막아냈다”며 “이 때부터 이장석 대표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장석 대표는 이택근을 영입하며 “우리 팀이 젊은 선수 위주로 재편성이 되다 보니 경험이 많고 기존 고참들과 함께 리더가 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이택근은 선수단을 이끌어갈 수 있는 이상적인 선수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택근이 주장을 맡을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는 주장과 관련된 질문에 “선수단에 좋은 후보들이 많다”며 “이제는 고참이다. 역할에 맞는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겸손해했다.

▲ 이미지 개선 그리고 그림자

“넥센은 2008년 창단 이후 네 시즌을 보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체계를 갖춰나가는 중이다. 이택근의 영입은 이러한 구단의 향후 비전을 가시화시키는 일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장석 대표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는 편이다. 그간 강행했던 트레이드로 인해 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에 시달렸던 까닭이다. 어렵게 입을 연 건 처음 세웠던 목표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2013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이택근의 영입은 그 두 번째 단추에 가깝다. 앞서 그는 지난 3월 김시진 감독과 3년 재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기간은 모두 3년 이상이고 계약 액수 또한 적지 않다. 대상들은 모두 내부 사정도 꿰뚫고 있다. 가장 주목할 점은 타 구단과의 차별성이다. 이장석 대표는 이택근에게 프로야구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의 금액을 제시했다. 김시진 감독은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둔 상황에서 재계약 카드를 건네받았다. 결과적으로 두 사례는 타 구단은 물론 팬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데 주효했다. 이른바 ‘이미지 개선’이다.

이장석 넥센 대표이사와 김시진 감독(사진=넥센 히어로즈)

넥센은 모기업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타 구단들과 달리 스폰서 계약을 통해 운영된다. 그래서 초반 운영에 대한 다양한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재정 상태는 해를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적자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올해는 손익분기점도 맞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올해 목동구장의 펜스 광고판에서는 여백을 발견할 수 없었다. 14일에는 넥센 타이어와 2013년까지 메인스폰서십 연장 계약도 체결했다. 이 대표는 최근 구단 직원들의 연봉을 대폭 인상시키기도 했다. 구단 관계자는 “과장과 팀장급이 20%가량, 평사원들은 50%까지 연봉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이어 “더 이상 불안에 떠는 선수들은 없을 것”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택근의 영입에는 의혹의 시선도 함께 공존한다. 넥센 구단은 2012년에만 이택근에게 최소 23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 여기에는 LG에게 전달해야 하는 금액이 추가로 붙는다. 올 시즌 연봉의 200%인 5억 4천만 원과 보상 선수 혹은 300%인 8억 1천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선수단의 연봉 총액에 버금가는 금액을 별도로 내주게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일부 관계자들은 이번 계약을 놓고 LG와의 보상선수 밀약 의혹을 제기한다. 한 관계자는 “LG가 FA 우선협상에서 적극적이지 않았던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전부터 공백으로 지적받던 마무리에 보상선수로 손승락을 데려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넥센은 지난해 말 LG와 손승락의 트레이드를 논의한 바 있다. 당시 LG가 거론한 카드는 현금과 준 주전급 외야수였다. 이번 FA에 대한 의혹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넥센 구단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하나 더 있다. 기존 선수들에 대한 연봉 처우다. 한 선수는 “이택근과 대형 계약을 체결하는 구단을 바라보며 솔직히 맥이 빠지더라. 연봉협상에서 영향을 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걱정했다. 다른 선수는 “구단 측은 연봉협상에서 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해달라고 했다”며 “매번 한 걸음씩 물러났는데 이번에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구단 관계자는 “FA 계약과 연봉협상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선수들의 고과평가를 모두 마친 상태다. 성적에 맞는 연봉이 지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넥센은 최하위로 추락했다. 인상을 기대할만한 선수가 그만큼 많지 않다. 그래서 이택근의 영입은 ‘양날의 칼’과 같다. 선수단에 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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