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증권사들은 올해 시장을 이른바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주가지수는 훌쩍 2000선을 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상저가 아니라 상고였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각 언론은 힐난조의 보도를 쏟아냈고 증권사는 절로 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실시간 연동되는 막강한 시스템과 기라성같이 똑똑한 애널리스트들이 대거 포진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는 왜 고작 두어 달 앞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할까?

증권사 입장에서는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시장의 속성과 본질이 원래 그렇다. 그들의 전망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지극히 객관적이며 명징한 것이고 그에 따라 도출된 결과 역시 대단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이 간혹 빗나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분석과 예측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시장은 본질적으로 지극히 불합리하고 대단히 비이성적인 곳이다. 르네상스시대 이래 개개인의 인간은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의 틀을 보유하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각 개인들이 일단 시장이라는 곳에 참여하게 되면 이제까지의 합리성은 어디로 가버리고 탐욕과 공포에 휘둘리는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군집이 되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과도하게 쏠리는 행태를 보이게 된다. 그 결과 시장 역시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모습을 노정하게 된다.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시장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잣대로 측정하고 예측하려고 하니 어긋나기도 하고 들어맞기도 한다.

흔히 시장의 지능지수는 측정이 불가하다고 한다. 그리고 시장이 투자자를 속인다고도 한다. 고전적인 관점에서는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그간의 절대적인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으로 증명됐고 세상은 결정론이 아닌 불확정성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현대경제와 금융 및 주식시장 역시 이러한 상대적이고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여 지배된다.

눈앞에 드러난 하나의 사건을 근거로 상황을 정의하고자 시도하지만 다른 사건이 다시 앞뒤로 영향을 미치며 불거진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무한히 반복된다.

이 상황을 과연 어느 누가 명쾌하게 정리하고 정의할 수 있을까? 온갖 변수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 끊임없는 영향을 주고받으며 극단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 이것을 아노미라 하거니와 주식시장은 아노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온갖 탐욕과 공포 그리고 그것이 빚어내는 무수한 에너지가 몰려다니며 좌충우돌하는 아노미 상태의 주식시장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로 예측한다는 사실 자체가 미안한 얘기지만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권사들은 무슨 이유로 애초부터 예측이 불가능한 시장을 분석하고 왕왕 실제와 상반된 결과의 전망자료를 내놓아 투자자들을 헛갈리게 하는 것일까? 망망한 바다 위 조각배에 앉아 어느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할 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나마 어떤 때는 맞기도 하고 또 더러 틀리기도 하는 보잘 것 없는 나침반이나마 들고 있는 편이 아예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불확정성과 불합리가 지배하는 아노미 상태의 시장에 대한 합리적 의견이며 중요한 것은 자료 자체가 아니라 그 자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혹은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유연한 시선과 열린 마음가짐으로 그 자료를 대할 수 우리는 비로소 시장을 관조하는 여유 속에서 빛나는 통찰을 획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기 SK증권 분당지점 지점장
조선기 SK증권 분당지점장은 대형우량주와 가치주 중심의 묵직한 투자전략으로 고객들의 두터운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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