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시 북정동의 용현BM 생산공장. 이미 생산이 완료된 심리스 파이프가 포장을 기다리고 있다. 심리스 파이프는 용접선이 없는 파이프로, 용현BM의 주력제품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멕시코만 석유시추시설이 왜 폭발했는 지 아십니까?” 경남 양산시 북정동. 공장을 둘러보던 중 켜켜이 쌓인 파이프를 가리키며 정현성 용현BM 대표가 물었다. 기자가 답변을 머뭇거리자 정 대표가 말을 이었다. “파이프 때문입니다. 흔히 파이프는 용접선이 있는데 높은 압력을 이기지 못해 용접선이 터지고 만 것이죠.” 용현BM은 바로 파이프를 만드는 회사다. 파이프생산 업체 대표가 스스로 흠이 될 만한 ‘파이프 폭발’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됐다. 하지만 의아함은 금세 해소됐다. 곳곳에 산적해 있는 용현BM의 파이프에서는 용접선 즉 용접 자국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용현BM은 자유단조 방식으로 부피와 중량이 큰 파이프를 생산하는 회사다. 자유단조업은 조선업, 풍력발전, 발전설비, 산업기계 등에 사용하는 부품·소재산업이다. 정현성 용현BM 대표는 “까다로운 기술 요건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은 장치산업이 자유단조업”이라고 설명했다.

단조업계는 조선-풍력산업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풍력 발전이 한창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중반, 대기업과 중소기업 할것 없이 모두 같은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2008년에 금융위기가 닥쳤고, 발주량은 급격하게 줄었다. 경쟁적으로 설비를 증설한 단조업체들은 상대적인 공급과잉으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금융위기 이후 조선과 풍력 산업이 서서히 회복 국면에 진입하고 있기는 하지만 판매가가 많이 떨어진 상태며, 그 와중에 소재가는 오히려 상승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용현BM도 주로 조선기자재, 풍력발전용 제품을 생산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악재에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발 빠르게 차별화 전략을 마련해 선제 대응한 덕택이다.

국내 최초로 ‘심리스 파이프’, ‘방사단조’ 제조법 개발

북정동 공장에서 정현성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차별화 전략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2009년이다. 그 간 자유단조 위주로 취급하다 ‘심리스 파이프(Seamless Pipe)’와 ‘방사단조(Radial Forging)’라는 히든카드를 내놓았다. 심리스(Seamless)는 이음매가 없다는 뜻이다. 보통 파이프는 코일을 구부려 용접을 해서 만든다. 그런데 심리스파이프는 용접이 필요 없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분필 모양의 금속이 공정라인을 거친다. 그러면 긴 빨대 모양이 된다. 속을 채우고 있던 짧은 금속이 늘어나면서 속을 비운 긴 파이프가 되는 것이다.

3m가 채 안되던 금속 원재료가 13m의 금속 파이프로 변하는 과정이 신기하다. 현재 몇몇 기업에서 심리스 파이프를 생산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세관(細管) 수준이다. 대형 설비 전용으로는 용현BM이 유일하다. 고압-고온에 잘 견디는 심리스 파이프를 생산하면서 이미 포화된 조선-풍력발전 시장에서부터 플랜트 분야로 눈을 돌리는 것이 가능했다.

‘방사단조’ 역시 용현BM이 차별화 전략으로 내놓은 야심작이다. ‘단조’는 금속을 두들기거나 압력을 가해서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단조는 상하로만 움직여 금속을 성형하는 방식이다. 허나 방사단조는 ‘사방’에서 타격이 이뤄지는 ‘멀티 단조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공정 속도가 빠른 것은 당연하다. 정확한 치수제어로 재료비와 가공비의 절감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정 대표는 “무엇보다도 일반강종에 비해 최소 10배 이상의 고단가 및 고수익 제품인 Ni-Alloy의 단조가 가능하다는 것이 방사단조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Ni-Alloy는 내열합금강이라고도 하며 고온에서도 그 기계적 성질이 변하지 않는 등 품질이 우수해, 원자력, 화력발전설비 및 해양 플랜트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정 대표는 “이 같은 신규 사업은 현재 자유단조 업황이나 설비과잉 문제를 고려해볼 때 옳은 선택”이라며 “특히 남들과 다르게 한발 앞서 시장조사와 투자를 진행했고, 또한 두 가지 모두 국내 최초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넘쳐나는 수주량… 설비증설에도 과감한 투자
2009년부터 현재까지 방사단조와 심리스 파이프 설비에 투자된 금액은 총 1000억원 정도다. 방사 단조라인은 현재 설비투자가 완료된 상태지만 심리스 파이프라인은 올해 200억원 상당의 열처리 설비 도입을 추가로 앞두고 있다. 정 대표는 “심리스 파이프라인의 양산체제 구축으로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하게 되는 올해 매출액은 전년대비 두 배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신규사업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겪고 있다. 국내에서 최초로 도입한 설비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정 대표는 “해외 공장에 실사를 가서 설비를 구현한 것이 아니라 도면만 어렵게 구해 레이아웃을 깔다보니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제한적인 조건에서 설비를 장착시켜야 했기에 최대한 효율적이고 스마트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현재 공정 라인의 생산효율은 일반 공정의 두 배에 달할 정도가 됐다. 이렇게만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단 하나의 장애만 생겨도 전체 공정이 마비되고 만다는 데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 대표는 애가 탈 수 밖에 없다.

“수주량이 부족해 공장이 쉬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물량은 넘치는데 설비 문제로 주문량만큼 생산하지 못하니까 답답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이내 목소리를 바꾸어 “수차례 기능의 변수를 겪으면서 보완 작업을 무한정 했다”면서 “현재는 보완작업의 막바지에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바로 이달, 3월을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시행착오가 걷히는 시기로 보고 있다.

해양플랜트 겨냥 글로벌 파이프사와 경쟁나서
단조제품이 공급되는 풍력과 조선 업황이 밝지 않음에 따라 정 대표는 일찍이 ‘해양플랜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해양플랜트의 주력 소재는 심리스 파이프”라면서 “플랜트 시공을 할 때 파이프가 차지하는 비중이 60~70%다. 최근 국내 대기업에서 해외플랜트 수주고를 올리고 있는데, 사실 대부분 수입용 파이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인건비만 받는 수준”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 대표는 이어, “용현BM의 신규 사업이 정착되면 실질적인 해외수주에도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글로벌 파이프사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용현BM은 우선 초기 중국이 석권하고 있던 중저가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정 대표는 “현재 미국, 유럽, 남미의 국가들로부터 중국제품이 반덤핑 판정을 받은 상태”라면서 “이 기회를 살려 미국, 유럽, 남미 뿐만 아니라 향후 일본 주요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OCTG(Oil Country Tubular Goods-유정용 강관)시장의 석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현BM은 지난해 12월, Oil&Gas용 심리스 파이프 판매를 위해 필수적인 ‘API Monogram(미국석유협회 인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최대 심리스 파이프 시장인 미국 10개 업체에 수출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정 대표는 “심리스 파이프 신생업체라고 해서 불리한 점은 별로 없다. 바이어들이 품질에 품는 의혹을 해소시켜 주면 된다”면서 “실제로 최근 해외 바이어의 구매 문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는 기업
심리스 파이프로 글로벌 경쟁을 꾀하려면 연간 생산량이 50만톤은 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북정동 공장에서는 최대 14만톤 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앞으로 더 많은 설비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정 대표는 “현재까지의 신규 투자는 단지 첫발을 내딛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용현BM의 북정 공장에는 심리스 파이프를 생산하는 라인이 단 하나다. 정 대표에 따르면 최소한 대여섯개 라인이 구비돼 있어야 본격적인 글로벌 경쟁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갑자기 공격적인 투자는 하지 않을 계획이다.

정 대표는 ‘차후 투자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무엇보다 신중하게 답했다. 정 대표는 “라인을 늘릴 계획에 따라 기존 유산동 공장 옆에 추가 부지를 분양받은 상태지만 성과를 분석하며 점진적으로 사업규모를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만큼의 생산라인을 구축하려면 앞으로 2000억~3000억원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설비를 완전히 구축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라인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지, 100% 투자로 글로벌 시장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킬 것인지는 차후 회사 상황에 맞게 채택하겠다는 얘기다. 정 대표는 이러한 과정에 마침표를 찍고 안정권에 들어서는 시기를 앞으로 3년 후로 예상했다.

2002년. 중소형 선박엔진 제품 생산으로 첫 걸음을 뗀 용현BM은 2007년 풍력발전부품 생산기업으로 발전했고, 2010~2011년에는 특수합금강 단조품 및 심리스 파이프 전문기업으로 변신했다. 정 대표는 “용현BM은 창립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변화했다. 한시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 및 시장 환경변화를 주시하고 있다”면서 “지속적으로 전 세계 금속소재시장의 변화를 모니터링하며 미래를 위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정 대표는 이어 “향후 10년이 지나도 지금처럼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병화 현대증권 스몰캡 애널리스트 / 팀장
플랜트 수혜株 올해 강력한 턴어라운드”

용현BM은 정유, 가스배송관, 심해 해양플랜트용 배관 등 고온, 고압용으로 사용되는 심리스 파이프에 대한 설비투자를 완료하고 지난해 말부터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 심리스 파이프는 국내 연간 수입액만 1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중국산 심리스 파이프가 반덤핑관세를 부과받으면서 중국산 수입이 급감하고 있어 용현BM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국내업체들의 FPSO, 드릴쉽, 화학, 정유, 발전플랜트의 수주가 증가하면서 심리스 파이프에 대한 국내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중대형 심리스 파이프를 제조하는 업체는 용현BM 밖에 없기 때문에 본격 생산이 되기 전부터 구매 문의가 줄을 잇기도 했다.

방사단조 사업의 전망 또한 밝다. 방사단조는 방산, 항공, 원전 등 특수 합금강으로 단조제품을 제조하는 것이다. 국내업체는 용현BM을 제외하고는 한일단조가 유일하게 방사단조를 이용해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외 대부분의 제품은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용현BM의 방사단조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올해는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볼 수 있다.

용현BM은 기존 자유단조부문의 부진과 대규모 투자로 인한 비용 증가로 지난 2년간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심리스 파이프와 방사단조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강력한 턴어라운드가 예상된다. 2012년 예상 실적기준 PER은 5.8배로 시장대비 절대 저평가된 상태다.

이코노믹 리뷰 박지현 j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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