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신민요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책임과 자녀를 교육하고 결혼시키기까지 모든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60세 전후 시니어들에겐 코웃음 칠 얘기다. 50대 후반 퇴직 후 60세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인생2막을 시작하려는 이들은 젊어서 열심히 일했고 이제 그 대가로 여유롭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도 그저 돈 안 쓰고 집에만 머물러 있던 예전 ‘노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경제성장에 따른 생활수준 향상과 평균 수명 연장에 따른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생애주기가 길어진 만큼 실제 나이보다 젊게 사고하고 활기찬 노후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타깃으로 한 시니어 산업도 각광받고 있다”고 해석했다. 기업이 60+시니어 세대에 주목하는 이유, 무역회사에 다니다 퇴직한 박민기씨의 24시를 통해 들여다봤다.

퇴직 후 재취업해 건물 주차 관리 일을 하는 박민기(67)씨. 새벽 7시와 오전 10시 교대로 출근해 하루 8~9시간씩 1주일을 근무하고 격주로 주말을 쉬고 있다. 어떤 때는 밤샘 근무가 생길 때도 있는데 생활리듬이 깨지는 게 싫어서 다른 직장을 찾아보려 한다. 아무튼 이렇게 꼬박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00여만원. 그 중 생활비에 보태라고 아내에게 주는 돈이 50여만원이다. 나머지는 용돈으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러고 보니 조금씩 나오는 국민연금도 있다.

박씨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정성들여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머리 염색이다. 직장에서 늙어보이고 싶지 않아 정기적으로 염색을 한다. 아무거나 쓰면 두피가 뒤집어져서 천연재료의 좋은 염색제를 구입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한다. 요즘은 노화방지 화장품에도 눈길이 간다. 노화방지 화장품을 쓰고 잔주름이 많이 옅어졌다는 딸내미 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챙기는 것이 각종 비타민제와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항산화에 좋다는 오메가3와 비타민C를 꼭꼭 챙겨 먹고 가끔 면역력 증강 효과가 있는 클로렐라를 산다. 요즘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배즙까지 배달해 마신다. 나이가 들수록 어째 피부가 점점 건조하고 민감해져 바르는 연고도 많아지고 잇몸 염증이 자꾸 심해지니 진통소염제를 달고 산다. 임플란트를 할까 고민 중이다. 거기에다 뱃살도 불어만 가니 아내와 아이들이 다이어트 하라고 성화다. 자전거를 하나 구입해 운동을 열심히 해볼까 싶다.

옷은 많이 사지는 않는 편인데 구입할 때는 오프라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을 거의 이용한다. 인터넷을 통해 좀 더 싸게 판매하는 데를 알아보고 있다. 쉬는 날엔 몇몇 친구들과 가까운 북한산으로 등산 가는 재미가 있다. 집에서는 아내와 자녀와의 사이도 예전같지는 않다. 대화를 많이 하지 않다 보니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또래 친구들을 새로 사귀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다양하고 섬세한 욕구와 감성을 지닌 60+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이들 세대들은 노화 방지용 기능성 화장품을 적극 사용하고 문화생활 및 성취감 높은 자기계발형 활동 등을 즐기는 등 기존의 실버세대와는 구별되는 성향을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9년 서울·대전·광주·부산 등 4대 도시의 60세 이상 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년층 라이프스타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니어들의 인생은 아직 발전 과정 중에 있으며 지금보다 더 안정된 내일에 대한 기댁감을 갖고 있는 등 종전의 ‘노인’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이들은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그런 소극적인 할머니가 아니다. 60대 시니어들은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늙지 않았다”며 “20대 못지 않은데 퇴물 취급하지 말라”고 외친다. 주목해야 할 할머니·할아버지 파워! 시니어 세대의 소비는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으며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시장 또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2020년 시니어 산업 125조원 규모로 성장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최근 발간한 ‘고령친화산업 실태조사 및 산업분석’ 보고서를 통해 “2020년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고령친화산업(시니어 산업) 시장규모가 2010년보다 4배 이상 급성장하고 금융, 화장품, 의약품 등의 산업 성장이 특히 두드러질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기준 33조원이던 시니어 산업 시장규모가 2020년 125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1955~63년에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포함하면 시장은 더 커지는 셈이다. 2020년 713만(전체 인구의 14.6%)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 인구로 편입되면 시니어 산업은 그야말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로 인한 시니어의 시장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 또한 시니어 산업 전망을 한층 밝게 해주는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의 기준을 이미 넘어섰고, 2030년께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처럼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웃도는 초 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를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입장이 대부분이다. 미국 사우스 폴로리다대학의 제임스 L 포자드 노년학과 교수는 “고령화는 위기라고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므로 관련 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령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들이 이용하는 제품과 서비스 시장도 점차 확대되기 때문에 기업은 관련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확보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니어 시장 규모는 미국 > 일본 > 한국 > 중국
고령화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다. 미국, 일본, 중국 등도 예외일 순 없다. ‘고령화된 미국 안에서 당신의 미래는 제한이 없습니다. 매일 1만1000명 이상의 베이비부머들이 은퇴를 앞두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산업 내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새로운 일,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의미합니다.’ 2010년 미국에서 볼 수 있었던 표어다.

다양하고 섬세한 욕구를 지닌 60+ 시니어들은 외모를 가꾸고 문화생활, 운동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즐긴다.

미국은 이미 1942년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7%를 넘으면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2014년 고령사회(14%), 2032년 초고령사회(20%)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대머리, 안경(시력교정), 청력, 치아, 관절, 발기부전 등으로 시니어 시장이 세분화되고 총 4800억 달러(약 539조6600억원)에 이른다.

일본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은 약 23%. 인구 5명 중 1명이 고령자다. 일본은 고령 사회에 대비해 이미 1980년대부터 시니어 산업에 박차를 가했다. 시장 규모는 2000년 38조엔(약 380조원), 2004년 60조엔(약 600조원)으로 늘어났고 2025년에는 120조엔(약 125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이다.

중국의 60세 이상 고령자 수는 2010년 총 인구의 13.26%인 1억 7765만 명에 달했고 2020년에는 2억 4800만명, 2050년에는 4억명으로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시니어 산업의 잠재력은 연간 5000억위안(약 6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원래 연간 6000억위안(약 78조원)에 달하지만 제품 공급은 1000억위안(약 13조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상 5000억위안의 시장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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