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의 성지에 설 수 있어서 정말로 영광이었다”는 슈퍼주니어 멤버 최시원의 말처럼 도쿄돔 무대에 서는 것은 특별한 의미다. 한류의 저변 확대와 K-POP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최근 많은 가수와 배우들이 일본의 다양한 방송과 공연장에서 팬들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도쿄돔에 입성할 수 있는 이들은 한정되어 있다. 도쿄돔은 최대 규모의 공연장을 채울 수 있는 관객동원력은 물론 그 이름에 걸맞은 위상을 획득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쿄돔은 성공의 상징이자 정복하고픈 목표점이기 이전에 팬들과 만나 음악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공연장이다. 그래서 도쿄돔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 이름의 무게는 물론 그 공간과 시간을 감당해내야 함을 의미한다. 서울을 시작으로 오사카, 타이페이, 마카오, 방콕, 파리, 상하이, 자카르타에서 월드 투어를 펼쳐 온 슈퍼주니어가 도쿄돔과 정면 승부를 벌였다. 지난 5월 12일, 13일 주말 양일간 2회 공연으로 총 11만 명의 관객과 만난 <슈퍼주니어의 월드 투어 ‘슈퍼쇼 4’>(이하 <슈퍼쇼 4>) 공연은 무려 3시간 30분 동안 총 37곡의 음악과 영상, 토크로 채워졌다. 슈퍼주니어이기에 할 수 있는 동시에 슈퍼주니어이기에 아쉬운 부분이 공존한 공연이었다.

극단을 오가는 스펙트럼의 향연

SMP부터 발라드, 록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은 물론 콩트, 토크 등을 통해 멤버들의 다양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시야장애석과 입석까지 들어찬 관객의 수는 무려 5만 5천 명이었다. 4층까지 빽빽하게 채운 관객들에게 무엇을 들려주고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으면서 지겹지 않은 시간을 선사할 수 있는가, 이것이 도쿄돔 공연의 과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일단 다수의 멤버가 있는 슈퍼주니어의 특징이 이 거대한 공간과 상성이 좋았다. 9명의 멤버들은 메인 무대(40m X 20m)에 더해 가로와 세로로 길게 만들어진 돌출 무대(50m X 50m)를 충분히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4m 높이의 리프트와 8m 크레인, 여러 대의 무빙카를 이용하여 공연장 전체의 팬들과 성실하게 만났다. 한국에서 발매한 5장의 정규 앨범은 물론 여러 유닛 활동 곡과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등 다양한 레퍼토리와 개별 멤버의 솔로 무대까지 긴 공연 시간을 구성하는 요소들도 충분했다. 특히 슈퍼주니어라는 그룹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멤버들의 음색만큼이나 각기 다양한 매력의 스펙트럼은 그 자체로 공연의 버라이어티와 스펙터클을 보장하는 요소였다. 특유의 격렬한 SMP로 무장한 대표곡들부터 예성, 규현, 려욱 등 보컬리스트 멤버들이 부르는 발라드와 ‘Sorry, Sorry, Answer’에 맞춰 섹시한 댄스 퍼포먼스를 보여준 은혁, 여기에 LMFAO의 ‘Party Rock Anthem’을 록으로 편곡해 드럼 연주를 선보인 이특, 그리고 밴드와 함께 크리스 톰린의 ‘Your grace is enough’를 기타로 연주한 시원까지 말 그대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무대를 선보였다. 브릿지 영상 역시 코믹 분장쇼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망가지는 콩트부터 허세처럼 느껴질 만큼 멋있는 모습을 극단으로 밀고 간 느와르 풍 클립까지 멤버들의 예능감과 연기력, 카리스마를 모두 만끽할 수 있게 꾸며졌다.

다만 개별 무대의 완성도와 별개로 전체 공연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떠올리기 어려웠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것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오프닝 곡 ‘SUPERMAN’을 시작으로 ‘Opera’, ‘갈증’, ‘미인아’로 이어지는 도입부는 다소 과하게 몰아친다는 인상을 주었고, 깜짝 게스트인 f(x)나 슈퍼주니어-M 조미의 등장에 극적인 효과를 충분히 주지 못한 점 등 전체적인 연결과 흐름이 다소 거칠었다. 개개인의 솔로 무대와 유닛 무대까지 수많은 무대를 선보였지만 이것들이 좀 더 리드미컬하게 강약조절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상영시간이 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처럼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이를 모두 담으려다 보니 클라이맥스의 임팩트가 순간의 스펙터클과 파괴력에 자리를 내준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슈퍼쇼>라는 타이틀이 말하고 있듯 ‘쇼’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충분히 유쾌하고 충실하고 화려한 시간이었다. 슈퍼주니어라는 특정 아티스트의 단독 콘서트인 동시에 K-POP과 SMP에 흥미를 갖고 있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마츠리’(축제) 같았다.

친근함의 슈퍼주니어 콘서트가 얘기하는 한류의 현재

사실 슈퍼주니어는 보아나 동방신기 등 같은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선배 가수들은 물론 다른 한류 스타, K-POP 가수들과 비교해도 일본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고 하기 어렵다. 지난 5월 9일 발매한 < Opera >를 비롯해 3장의 싱글과 유닛 싱글을 발매했지만 정식 데뷔나 체계적인 프로모션이 없었다. 그런 그들이 도쿄돔이라는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류 1세대부터 오랫동안 한류 붐을 지켜봐 온 일본인 모모코 씨는 “약 1년 전부터 슈퍼주니어의 인기가 급속도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전성기보다는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탄탄한 팬덤을 자랑하는 동방신기와 같은 회사 소속이라는 점이 슈퍼주니어에 관심을 가지는 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큰 계기는 단순히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예능,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접하며 친근감을 느낀 것이라고 한다. <슈퍼쇼 4>의 총 연출을 맡은 정창환 이사 역시 “다인 멤버라는 특성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다. 각자 뚜렷한 캐릭터가 있어서 말 그대로 뭐든 할 수 있고 그들이 가진 희로애락을 공연에 모두 담을 수 있”고 “각자의 매력이 다르다 보니 흥미를 갖게 되면 파고들어 일종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팬들에게 소구되는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13일 공연을 관람한 미나미 씨의 감상도 흥미로웠다. “사실 슈퍼주니어에 대해 잘 모른다. K-POP을 좋아하는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왔다. 팬이 아니어도 부담 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공연이라는 말에 와 봤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아는 곡이 별로 없었지만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는 그녀의 말처럼 공식 팬클럽 ‘엘프 재팬’을 비롯한 열광적인 팬덤은 물론 멤버들의 다양한 활동 중 어느 하나가 계기가 되어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정상에 올랐던 보아나 동방신기와 달리 슈퍼주니어는 한국에서의 다양한 활동과 중국, 태국 등 여타 아시아 지역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다. 기존과 다른 길을 걸어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류는 K-POP에 힘입어 다시 붐을 맞이했고, 아시아는 물론 유럽, 남미 등 세계 전역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류의 본원지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다소 열기가 사그라지고 있는 추세다. 그 원인을 두고 너무 많은 이들이 한류를 등에 업고 일본에 오는 것에 대해 다소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는 의견과 지난 1, 2세대 한류와 마찬가지로 고저의 곡선을 그리는 사이클의 특성상 주춤한 시기일 뿐 향후 2, 3년 뒤 또 어떤 모습일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일본에서는 K-POP 한류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 슈퍼주니어의 인기는 향후 일본에서 한류가 지속될 수 있도록 미래를 예측하고 방법론을 고민하는데 유의미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 SM 엔터테인먼트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도쿄=김희주 기자 fifteen@
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
<ⓒ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