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금메달리스트는 울먹였다. 감격이 아니었다. 울분이었다. 무심코 접한 말에 핑 눈물이 돌았다. 악성 댓글이다.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 14일 오후 인천공항. 여자 양궁 개인, 단체전 2관왕에 오른 기보배는 2012 런던올림픽 한국 선수단 기자회견의 선봉에 섰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솔직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미소는 길지 않았다. 이내 “어제 한 네티즌이 쓴 글을 보고 많이 속상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개인전 금메달에 대해 운이 좋았다는 말이 많았다. 아침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야간 라이트를 켠 채로 나방과 싸우고 모기에 뜯기며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 말씀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 떨리는 목소리는 호소에 가까웠다.

기보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리를 함께 한 선수 대부분이 비슷한 고충을 겪는다. 한 선수는 “관심을 가져주는 건 반갑지만 악성댓글이라면 사절”이라며 “운동에 방해가 될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라고 털어놓았다. 한 프로 선수는 “내성이 생겼다고 여겼지만 막상 접하고 나면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고충은 주변에서도 발견된다. 가족, 친구, 코칭스태프가 함께 떠안는다. 선수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거리다.

악성댓글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 일부 포털사이트의 댓글 운영이 다수 추천 혹은 답글 순으로 바뀌어 더 심해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부분은 인신공격성 험담이나 근거 없는 비방. 형법상 모욕죄나 협박죄,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사이버명예훼손, 사이버스토킹 등의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운동선수가 소매를 걷어붙이는 경우는 드물다. 빡빡한 경기, 훈련 일정을 소화하는데다 또 다른 구설수에 휘말릴까 우려한다. 일부 종목에서는 전체 이미지의 추락을 걱정해 선수를 만류하기도 한다. 한 관계자는 “아마추어 선수들은 올림픽 혹은 아시안게임 때나 겨우 대중에 이름을 알릴 수 있다. 이왕이면 좋게 넘어가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프로들이 아니다. 정신적 상처를 더 크게 입을 수 있다”며 자제를 부탁했다.

계속된 호소에도 악성댓글은 줄지 않는다. 기보배의 눈물 기사에까지 주렁주렁 달릴 정도다. 대중의 목소리는 아니다. 그래서 태릉선수촌 선수들 사이 롤 모델로 불리는 장미란의 대처는 충분한 답안이 될 수 있다. 그는 “(댓글을) 거의 보지 않는다.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외모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다. 응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기도 모자랄 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글에 신경을 쓰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운동 자체를 하지 못할 거다. 일단 체중을 불릴 수조차 없으니까”라고 덧붙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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