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맛, 골드 컬러 이미지로 프리미엄 대중 맥주로 재탄생한 오비맥주의 ‘OB골든라거’.

불과 1년 전만 해도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존재하던 ‘OB’ 브랜드가 리뉴얼 브랜드 ‘OB골든라거’로 탄생해 부활에 성공, 옛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마케팅 관련 책에까지 ‘잊혀진 브랜드의 화려한 부활’ 성공 사례로 당당히 소개될 정도다. 기존 제품과 비교해 깊이가 다른 풍부한 맛과 뛰어난 품질, 과감한 패키지 디자인 및 광고 전략이 그 비결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단언했다. 다시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고. 시장 1위 브랜드가 우월적 위치를 지키지 못한 사례로 빈번히 거론될 만큼 굴욕도 겪어야 했다. 1970~1980년대 국내 맥주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OB’(오비) 브랜드 얘기다.

1990년대 초반 경쟁사 조선맥주(하이트진로의 전신)의 ‘지하 150m 천연암반수로 만든 맥주’라는 획기적인 ‘물’ 마케팅에 밀려 시장 1위 자리를 내주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성기 시절 70%에 육박했던 브랜드 점유율(한국주류산업협회, 수출제외 내수 기준)은 2010년 최저 2.1%까지 떨어졌다. 이후 ‘OB라거’, ‘OB블루’ 등을 거쳐 계속 리뉴얼 해왔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회생 불가능할 것 같았던 OB가 최근 대반전을 이뤘다. 업계 누구도 예상 못했던 일이었다.

OB는 지난해 3월 맥주 맛에 대한 기대와 변별력이 높은 30대 남성을 주 타깃으로 한 정통맥주 ‘OB골든라거’로 새롭게 탄생, 출시 200일 만에 판매량 1억병을 돌파했다. 이어 422일 만에 2억병 판매를 기록하며 맥주 시장에 황금빛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바닥을 쳤던 OB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올 상반기 3.3%까지 올랐다. 맥주 자체가 소비자의 선택이 잘 바뀌지 않는 기호식품임을 감안할 때 전체 시장에서의 1% 상승은 큰 성장 수치라는 평가다.

OB골든라거는 결국 오비맥주가 강력한 상승 기반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6년 조선맥주에 1위 자리를 내준지 15년만에 ‘만년 2위’라는 꼬리표를 떼고 정상을 재탈환한 것.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맥주 출고량을 집계(수출포함 기준)한 결과에 따르면 시장점유율이 2010년 오비맥주가 45.4%, 하이트진로가 54.6%였으나 지난해부터 전세를 바꾸며 올 상반기에는 오비맥주 54.7%, 하이트진로 45.4%로 역전됐다.

오비맥주는 “OB 브랜드 리뉴얼이냐, 신규 브랜드 론칭이냐를 두고 고민이 무척 깊었다”며 “기존 OB라는 브랜드가 친숙한 느낌을 주긴 했지만 너무 낡았다는 이미지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래도 맥주 회사로 출발한 정통성은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 브랜드 리뉴얼이라는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어떻게 리뉴얼할 것인가’였다. 오비맥주 이창진 마케팅 부장으로부터 OB골든라거 화려한 부활의 비결을 들어봤다.

Code1 최고급 홉으로 맛과 향 더 품격 있게
부활의 출발점은 ‘맛’이었다. OB브랜드의 잔류 여부를 결정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사내 의견은 분분했다. ‘카스처럼 톡 쏘고 신선한 맛으로 갈까’ vs ‘수입맥주처럼 독특한 맛으로 승부할까’ 브랜드 점유율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던 2010년 당시 오비맥주의 마음이었다. 그동안 청량감을 내세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던 대표 효자 브랜드 카스를 잇는 맛은 어떨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맥주 명가의 자부심을 가져가기로 결정한 이상, 카스의 아류작을 내놓기 보다는 특색 있는 새로운 맛으로 승부해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콘셉트를 ‘고품격 대중 맥주’로 정하고 제품명도 프리미엄급을 강조하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선호도가 무난한 ‘OB골든라거’로 지었다. 맥주 맛을 아는 30대 이상 고객이 주 타깃이었으며,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풍부하고 깊은 맛에 초점을 맞췄다. 4년간 11명의 베테랑 브루마스터(맥주 제조 기술자)가 최고의 맛을 찾아 연구를 거듭했다.


이 부장은 “맥주 맛을 결정하는 것은 향과 풍미이고 이를 좌우하는 것이 홉”이라며 “OB골든라거는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 홉 가운데서도 최고급으로 꼽히는 아로마 홉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아로마 홉은 일반 호프보다 가격이 5배 이상 비싸다. 비싼 만큼 맛과 향이 훨씬 뛰어나다. OB골든라거는 그 중에서도 할레타우(Hallertau) 지방에서 나는 펄레(Perle) 홉을 썼다. 이 부장은 “최고급 홉으로 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 정통맥주 특유의 쌉쌀하면서도 풍부하고 품격 있는 맛과 향을 창출해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Code2 100% 골든 몰트로 골고루 구수하게
이 부장은 “맛의 또 다른 비결로는 골든 몰트(황금 맥아)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골든 몰트란 캐나다 및 호주의 최고급 청정 보리를 ‘타워 몰팅’(Tower malting) 공법으로 로스팅(볶는 과정)한 것을 말한다. 타워 몰팅은 1회 최대 300톤까지 맥아를 만들 수 있는(제맥) 신공법이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오비맥주만 사용하는데 다른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살라딘 몰팅(Saladin type malting) 공법에 비해 한꺼번에 7~8배 많은 맥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맥아 제조 공정은 2주 이상 균일한 환경 유지를 필요로 하는 까다로운 과정이다. 한 번에 많은 맥아를 제맥할수록 흩어지는 게 줄어, 같은 조건에서 동시에 더 많은 맥아가 가공돼 맥주 맛의 균질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 부장은 “타워 몰팅 공법은 온도, 습도 등 환경 변수 통제에도 기존 방법보다 유리하다”며 “골든 몰트를 얻어내는 핵심은 타워 몰팅 공법에 있다. 100% 골든 몰트로 빚은 OB골든라거는 맛이 구수하고 풍부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품질이 높은 맛을 고르게 유지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Code3 기존 블루톤 패키지&광고, 골드로 과감하게

오비맥주 이창진 마케팅 부장이 옛 OB 브랜드 제품들과 리뉴얼한 OB골든라거를 감싸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이코노믹리뷰 박지현]

블루 컬러는 계속 고수해오던 OB브랜드의 주조색. 2011년에는 골드 컬러로 옮겨가 고급스러움을 한껏 강조했다. 제품의 패키지 바탕색을 골드로 바꾸고 대신 OB 브랜드 로고는 블루 톤을 유지해 정통성의 이미지를 담았다.

이 부장은 “골드 색상은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맥주 색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며 “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컬러이기도 해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골드와 블루가 본래 잘 섞이지 않는 조합이다 보니 최상의 조화를 이룬 디자인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만만찮았다는 설명이다.

CF에도 과감한 시도를 했다. 광고업계에서는 잘 활용하지 않는 ‘블랙 앤 화이트’ 톤을 전체적으로 사용해 골드 색상이 확 부각되도록 했다. 이 부장은 “맥주 맛을 아는 30대 이상을 타깃으로 한 만큼 30대 성공한 남자가 폼 나게 맥주 마시는 이미지를 연출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OB골든라거는 출시 전, 시장조사에서부터 돌풍을 예고했다. 오비맥주에 따르면 잠재 고객을 대상으로 수십 차례 실시된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성별과 연령을 막론하고 거의 예외 없이 가장 선호도가 높은 맥주의 하나로 OB골든라거를 꼽았다.

소비자 구매의향 조사에선 평균 10명 중 7명 정도가 OB골든라거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판 중인 대부분의 맥주 제품 구매 의향이 30~40%대에 머문 것과 대조적이었다. 중장년층은 옛 OB의 향수를 느낄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었고, 쓰지 않고 목 넘김이 부드럽기 때문에 젊은층에게도 호응이 높다는 설명이다.

오비맥주 이창진 마케팅 부장이 꼽은 ‘올드 브랜드 회생의 조건’
“브랜드를 계속 살아 숨 쉬게 하라”

OB브랜드가 쇠락의 길을 걸었던 요인은 ‘브랜드 관리 소홀’
맥주의 대명사로 OB가 손꼽힐 정도로 브랜드의 시장 장악력은 대단했으나 오비맥주는 1999년 경영난을 겪고 있던 진로로부터 ‘카스’ 맥주 브랜드를 인수한 뒤 낡은 이미지의 OB브랜드를 뒤로 하고 카스를 주력 브랜드로 밀고 나갔다. 그리고 젊은층을 적극 공략하는 전략을 폈다. OB는 나중엔 카스에 완전히 밀리는 처지가 됐다. 그러자 회사 차원에서도 2005년 이후 광고 등 OB에 대한 투자가 점점 줄어들었고 브랜드는 존폐 위기에 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올드 브랜드 리뉴얼 성공 비결은 ‘지속적 업그레이드+뉴스 제공’
올드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경우 맛과 디자인 등에 대한 소비자 조사를 끊임없이 해야 하며, 이를 반영해 계속적으로 리뉴얼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비자가 브랜드를 받아들여 평가하는 속도와 기업이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속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변화를 감지하는 속도가 빠른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즉각 반응해야 한다. 이를 늦추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마음은 금방 식어버린다. ‘이 브랜드는 항상 내 옆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도록 해야 한다. 또 죽은 브랜드가 되지 않도록 소비자에게 뉴스거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소비자 불만사항에 대해서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가도 관건이다.

OB브랜드 미래 전략은 ‘맛에 대한 품질 관리 집중’
지속적인 소비자 조사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히 수행, 고객 경험을 제품에 반영할 계획이다. 맛에 대한 품질을 높이고 관리하는 데 집중하면서 OB골든라거 브랜드의 선호도를 상승시키는 데 집중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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