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암으로 투병 중이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것이 지난 3월의 일이다. 4번에 걸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무려 14년을 집권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남미의 해방자', '중남미 좌파 혁명의 아이콘', '가난한 자들의 대통령', '반미의 기수'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21세기의 독재자'라는 무시 못 할 평가도 공존한다.

신간 '베네수엘라의 실험: 차베스 정권과 변혁의 정치'는 이 같은 차베스와 그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에서 출발한다. 한편에서는 차베스 정권을 집권 연장에만 몰두한 대중중의로 바라보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정한 사회변혁을 추구한 사회주의로 규정한다. 여기에다 수차례 발생한 정권 전복 시도들로 차베스 정권의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면서 상황은 친(親) 차베스와 반(反) 차베스 구도로 이어진다. 이 같은 양자구도는 차베스 정권의 성격과 성과에 대한 정밀하고도 객관적 평가를 방해한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이 책에서는 차베스의 실험적인 변혁의 실체와 성과를 낱낱이 분석하기에 이른다.

1990년대 말부터 중남미에서는 좌파 집권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베네수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99년 집권한 차베스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꾸준히 반미를 외치고, 사회주의로의 대변혁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석유산업을 포함한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했다. 국유 기업들은 노동자들과의 공동경영 형태로 전환됐다. '좌파의 희망'으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집권했던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은행 및 기간 산업의 국유화 등에 실패해 비난을 받은 것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다.

그러나 '21세기 사회주의 모델'로 환영받던 차베스에 대한 기대와 환호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자신들이 독점했던 사유재산을 고스란히 뺏기게 생긴 중상층 계급들의 불만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노동계층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사회복지 지출을 확대하고 친노동적 정책을 확대하려는 차베스 정권 하에서도 노동조합운동은 분열을 거듭하고, 노동자들의 계급 형성은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못한다. 오히려 정권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노동총동맹(CTV)과 차베스와의 관계마저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좌파정권-노동계급 유대 관계 명제가 도전을 받기 시작한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좌파 정권이 집권하면서부터였다. 1990년대 좌파 정당들의 집권 붐 속에서 등장한 유럽 좌파 정권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계급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중략)...노동계급과 좌파 정권의 갈등은 서구에 비해 중남미에서 훨씬 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p89)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공동경영 실험은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주목할 만하다. 공동경영은 국가가 노동자와 함께 공동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으로, 차베스 정권 변혁성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 차베스는 재정위기의 사기업을 국유화해 각각 '인베팔', '인베발'이라는 기업으로 탈바꿈시킨다. 저자는 8년이 지난 지금 두 회사 모두 10% 안팎의 낮은 공장가동률을 벗어나지 못하는 등 사실상 공동경영 기업이 경영 성과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회적 공공성의 실현에 대해서는 그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기업들은 존재 근거와 경영 목표가 사기업과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 공공성 실천을 주요 평가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베네수엘라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조 교수는 "한국은 GDP 수준 등 외양은 유럽 수준이지만 구조적 조건은 중남미와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유럽에서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참조하고, 중남미에서는 변화를 추동하는 과정과 그 동학을 참조한다"며 "특히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 하에서 추진됐던 변혁 실험을 중심으로 한 역동성과 전략적 고민들은 유럽 등 다른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경험이고, 이 책을 통해 그 경험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후마니타스 / 조돈문 지음 / 1만7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