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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표절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의 일부를 그 출처를 밝히지 않고 몰래 쓰는' 행위다.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으로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지적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표절은 음악, 영화, 드라마 등문화예술 창작물부터 대학생들의 리포트, 석박사 학위 논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최근 들어서는 '표절=범죄'라는 인식이 차츰 강해지면서 공직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에서도 표절이 단골 소재로 등장하게 됐다. 주로 이들이 학위를 따기 위해 작성한 논문이 문제가 된 경우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병준 교육부 총리가 논문표절 의혹에 휩싸이면서 취임 13일 만에 사퇴한 것은 오히려 '신사적인' 경우였다. 책임을 지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가 평교수 시절 쓴 논문 5편이 표절로 판명돼 총장 취임 56일 만에 물러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후 표절은 표절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는 반대로 그에 둔감해지는 양상이 돼 가고 있다. 표절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도덕 의식은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숙명여대 출신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이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취임 2개월 만에 마지못해 자진 사퇴했을 때부터 이 같은 역행 움직임은 나타났다. 지난해 4월 문대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누가 봐도 명백한 논문 표절이 불거졌지만 아직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같은 표절 윤리 둔감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민대가 예비심사에서 표절 판정을 내리기까지 했지만 문 위원은 이의를 제기하며 버티고 있다. 이것이 비단 문 의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표절'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도 없이 암묵적으로 만연해 있었다"며 "그러던 것이 2005년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표절 등과 관련한 연구윤리에 대해 사회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관심은 높아졌지만 관심만큼 책임을 지는 모습이 비례하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 대학 사회 만연한 '표절 불감증'
최근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표절에 둔감한지 알 수 있다. 교수신문이 전국 4년제 대학 교수 6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전체 86%가 동료 교수의 표절 행위를 '조용히 처리'하거나 '묵인한다'고 답변했다. 특히 동료 교수의 표절을 '모른 척 한다'는 응답이 23.7%로, 지난 2001년 설문조사에 비해 6배나 늘었다. 문헌정보처리기업 ㈜무하유가 올해 초 실시한 설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사 결과, 대학생들의 56%가 표절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고 답했다. 인용과 표절의 차이점을 잘 모르는 대학생 46%, 인터넷 자료를 참조할 경우 인용 방법을 모르는 대학생도 64%에 달했다.
가장 많은 표절 사례는 출처표시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무하유의 김희수 이사는 "간혹 실수로 출처표시를 빼먹는 경우도 있지만, 의도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워낙 많은 자료를 인용해 출처를 일일이 다 쓰다보면 본인이 직접 쓴 분량이 극히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평가자한테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의도적으로 짜깁기를 하는 사례도 많은데, 이런 경우도 명백한 표절이다. 한 문장이 같아도 100% 표절이다."라고 강조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논문 표절로 징계를 받은 대학교수만 83명이나 된다. 서울 사립대의 한 교수는 "한 편의 논문에 인용되는 참고문헌만 하더라도 그 수가 엄청나고, 인용과 베끼기의 경계가 모호해 표절 여부를 가려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교수는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을 '베끼기'에 가깝게 쓰고도 논문 심사를 통과한 사례도 있다"며 "논문을 통해 학문적 성과를 드러내기 보다는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논문 통과에만 급급한 경우"라고 지적했다.
◆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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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관계자는 "각 학회나 연구단체마다 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힘들다"며 "현재 각 단체마다 연구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특수대학원에서는 논문보다는 시험 등으로 학위를 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절 검증 및 이에 따른 처벌 방안 등도 각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정해놓고 있지만 사실상 각 대학이 일일이 논문표절 및 중복게재 등을 적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표절의 예방 및 방지를 일차적으로 연구자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전국 주요대학 연구윤리 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3개 대학에서 최근 6년간 연구윤리 위반행위로 적발된 건수는 10여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대학이 매년 배출하는 석박사는 전국 대학의 15%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만 논문표절 검색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아서 적발 건수가 저조한 상태다. 또 학문윤리의 기본으로 꼽히는 연구윤리 준수 서약서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또 전국 대학 253곳 중 가운데 59%는 논문이 표절로 드러나도 학위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었다. 부정행위 적발 시 학위를 취소한 대학은 10곳 중 4곳에 불과했다. 논문의 표절 여부를 가리는 문장 유사도 검색 시스템인 카피킬러, 턴잇인 등을 도입한 대학도 11.5%인 29곳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학 차원이 아니라 교육부 차원에서 좀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삼호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각 대학에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더라도 제보 여부에 따라 조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사후조처라는 한계가 있으며, 시스템적으로도 교육부 차원의 훈령만 존재하기 때문에 강제성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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