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서울대 교수가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정책금융글로벌포럼에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정책금융을 둘러싼 보조금 논란을 최소화하고 국내 금융이 취약한 기업투자금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산업은행에 정책금융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산은은 정책금융보다 기업투자금융(CIB) 업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 통합안'에 대한 일종의 반박인 셈이다.

이재민 서울대 교수는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정책금융글로벌포럼에서 "금융기관이 지원하는 산업 보조금은 세계무역기구(WTO)뿐 아니라 각국 정부에서도 민감한 이슈"라면서 "보조금 분쟁에서 취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산은과 정금공을 분리하는 현 체제가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와 관련해 "WTO 협정에 정책금융에 대한 면책조항이 없어 정책금융제도가 유지되는 한 보조금 분쟁 위험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면서 "산은이 민영화를 위해 일반금융을 추진했는데, 정부안처럼 정책금융 업무를 부여할 경우 다시 보조금 리스크가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산은에 대해서는 WTO가 이미 보조금 분쟁의 주요 대상으로 거론한 상태"라면서 "산은이 기업대출 같은 일반금융을 한다고 해도 WTO 등은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산은은 일반기업에 대한 금융과 정책금융이 혼재돼 있어 방어에 유리한 금융제도 이점을 상실했다"면서 "보조금 분쟁이 발생할 경우 다른 국책은행이나 상업은행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산은을 CIB 전문기관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금융시스템 설계관점에서 한국 정책금융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박연우 중앙대 교수는 '산은을 국내 대표적인 CIB 기관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정금공과의 통합에 반대 의견을 보였다.

CIB는 투자은행(IB)과 유사하지만 은행간 업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박 교수는 "금융당국이 대우증권을 IB로 키우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업력이 짧아 IB라고 해도 글로벌 자본시장에 들어가기는 어렵다"면서 "이미 경험을 갖고 있는 산은이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원래 방향대로 민영화를 추진해 글로벌 CIB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산은과 정금공과의 통합에 대해 그는 "정책금융과 CIB는 기능 측면에서 전혀 다르다"면서 "정책금융 업무가 산은으로 일원화될 경우 CIB는 문화적 충돌로 고사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산은에게 기업구조조정을 포함한 정책금융을 주업무로 맡기는 것은 국가대표팀에게 동네축구만 하라는 것과 같다"면서 "정책금융은 정금공에 모두 넘기고 산은은 CIB만 전념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을 준비한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기자와 만나 "정책금융은 해당 국가의 보조금, 관세, 조세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발표한 정책금융안에 이 같은 세부내용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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