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까지 열리는 대장경축전을 맞아 해인사 스님들이 팔만대장경판 진본 8점을 법보전 밖으로 꺼내 들고 나오는 모습. 사진= 백소아 기자 sharp2046@

대장경세계문화축전 내달 10일까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사찰과 예술의 만남'. 경남 합천 가야산 자락 해인사 일대가 '마음'을 '예술'로 전하는 거리로 탈바꿈했다. 26일 개막한 '대장경 축전'을 맞이해 사찰 경내외와 주변 소리길, 성보박물관 등지에 '마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설치됐다. 청명한 가을하늘과 깊은 골 빽빽한 나무숲의 가야산, 맑은 계곡물 소리와 함께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청정한 설법처럼 맑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부처의 말씀을 글과 그림으로 새겨 넣은 옛 고려의 대장경 역시 한 글자로 요약하자면 '마음'이다. 이번 축전을 기념해 해인사의 상징유물인 '팔만대장경판' 진본 8점도 대중에게 공개됐다. 해인사 주지 선해 스님은 축사에서 "1000년 전 몽골 침입 등 국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마음'으로 조성한 대장경의 지혜를 살펴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돈을 치유하는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성금 작가의 야외조각 '부처의 소리' 사진= 백소아 기자 sharp2046@

◆해인사 일대 '예술 꽃' 피다 = 지난 2011년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축전의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총 30팀이 참여했다. 전시는 '해인아트 33경'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으며 평면, 입체, 미디어, 설치 등 70여점의 작품이 해인사 일대에 전시되고 있다.
　
사찰 입구 왼편 언덕에 자리한 안성금 작가의 브론즈 조각 '부처의 소리'는 부처상을 반으로 잘라 서로 떨어뜨려 놓은 작품이다. 빈 공간은 '일반인에게도 감춰진 불성'을 뜻하며, 이는 곧 진솔한 내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면 196개의 하얀 깃발이 세워진 설치작품을 만나는데, 인도 작가 비파갈로트라의 '하나의 세계'라는 작품이다. 낮에는 흰 야광실로 수놓아진 단어와 그림들이 잘 보이지 않는데, 이는 순백의 깃발이 국가, 종교,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뜻한다.
　
성보박물관 내에 전시된 이이남 작가의 '산장고일도'는 명나라의 화원화가 이재의 그림을 재해석해 흑백의 그림에 색을 입히고 계절의 변화를 준 것이다. 이 작가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곳에 비치된 임옥상 작가의 '허허미륵'은 12m에 이르는 비단 천 210장 위에 화엄경을 필사하고 그 천들을 천장에 설치한 것으로 관람객들을 천 사이로 고요히 거닐게 했다.
　

윤석남 작가의 설치작품 '1025사람과 사람없이'

소리길에 설치된 윤석남 작가의 '1025 사람과 사람없이'는 유기견 1025마리를 거두고 길렀던 한 할머니의 사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수많은 유기견을 조각으로 만든 이 작품을 제작하기까지는 5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소리길은 홍류동 계곡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6km의 길에 새로 개설한 탐방로다. 만년에 해인사에서 은거했던 신라말 유학자 최치원이 명명한 가야산의 19경 가운데 16경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25일 종고스님이 해인사 마애불입상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백소아 기자 sharp2046@

◆'어가행렬' 같은 대장경판 이운식과 마애불입상 첫 공개 = 축전 개막을 앞둔 지난 25일에는 대장경판 이운식(移運式)이 열렸다.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된 법보전 앞마당에서 시작된 이운행렬은 대장경판 진본 8점을 태운 가마를 따라 취타대의 경쾌한 음악과 스님들의 목탁ㆍ염불소리와 함께 거행됐다. 부처님 말씀을 새긴 경판들을 옮기는 모습은 마치 왕을 모시는 '어가행렬'과 같았다. 사찰 경내외를 돌고 입구까지 나온 가마에서 대장경판이 꺼내졌고, 다시 무진동차에 실려 해인사 아래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로 옮겨졌다. 이날 해인사는 사찰 뒤편 해발 1000m에 위치한 마애불입상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높이 7.5m, 너비 3.1m 규모로, 전국에서 가장 큰 마애불로 전해지는 이 불상을 대중에 선보이는 것은 9세기경 불상이 제작된 후 1200년 만에 처음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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