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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심(父心) 없는 넥센 흔들린다

최종수정 2013.11.23 17:35 기사입력2013.11.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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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넥센 더그아웃[사진=정재훈 기자]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프로야구의 세계는 냉정하다. 경쟁력 부재는 곧 전력에서의 제외다. 팀에서 쫓겨나는 일도 다반사. 선수들은 불변의 생태계를 잘 알고 있다. 2군에서 기약 없는 내일을 준비하며 뼈저리게 절감한다. 이적이나 방출에 대한 겸허한 수용은 그렇게 생긴 내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서운함만큼은 숨길 수가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를 개최했다. 2년마다 치러지는 지명회의는 메이저리그의 룰5 드래프트를 인용했다. 각 구단 보호선수 40인 명단에서 제외된 선수들이 지명대상으로 나온다. 구단들은 현금을 주고 이들을 데려갈 수 있다.

총 34차례 지명에선 넥센 소속 신현철의 이름도 불렸다. 꽤 좋은 기량을 갖춘 선수다. 시즌 초 감독으로부터 중용을 약속받았을 정도다. 그러나 기량은 또 꽃을 피우지 못했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다. 음주 상태에서 차를 몰다 사고를 냈다.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음주 뺑소니로.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신현철은 갓길에 주차를 하고 지인과 술자리를 가졌다. 1시간여 뒤 그는 대리운전을 불렀다. 운전기사를 기다리는데 차를 빼달란 요청이 있었다. 그렇게 잠시 잡은 운전대는 화근이 됐다. 택시와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고, 다시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려다 뺑소니로까지 몰렸다. 10m 앞이라도 사고 지역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신현철은 바로 경찰서에서 택시기사와 의견을 조율했고, 다음날 합의금을 지불했다.

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대표[사진=정재훈 기자]

무지와 잘못에 신현철의 인생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내렸고, 야구팬들 사이 범죄자로 낙인이 찍혔다. 구단은 중징계를 내렸다. 2013시즌 공식 경기 출전 금지와 함께 벌금 1천만원을 부과했다. 신현철은 앞서 KBO로부터도 4개월 출전 정지와 사회봉사 징계를 받았다.

이 같은 사례는 프로야구에서 적잖게 벌어진다. 대부분은 알려지지 않고 묻힌다. 피해자와 자리에서 바로 합의를 보기 때문이다. 1년여 전 B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순간 B는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차 앞으로 한 남자가 몸을 던졌다.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셨던 남자였다. 경미한 사고였지만 B는 그 자리에서 500만원을 주고 사고를 매듭졌다.

구단들은 대체로 선수들의 음주 사고를 엄하게 다스린다. 이미 KBO로부터 징계를 받은 선수에게 자체 징계를 추가로 가한다. 임의탈퇴로 처리하기도 한다. 물의를 거듭 일으켰을 때가 여기에 속한다. 한 차례 실수에는 대개 선수를 보호하거나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준다. 이를 두고 한 은퇴선수는 “선수와 구단 사이 유대감 덕”이라고 했다.

넥센은 지난 2차 드래프트에서 김민우(KIA), 신현철(SK), 김사연(KT), 심수창(롯데), 김대유(SK) 등을 떠나보냈다. 이 가운데 두 명은 음주로 물의를 일으켰다. 넥센 윗선은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이들을 선수단에서 내보내려 했다. 특히 이장석 대표는 “도덕적 문제가 있는 선수는 절대 안 된다”라는 의견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잇단 트레이드 추진은 불발됐다. 결국 두 선수는 40인 명단에서 제외돼 다른 팀으로 건너갔다.

왼쪽부터 신현철, 지석훈, 박동원[사진=정재훈 기자]

강진구장에서 훈련 중이던 두 선수는 이탈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2차 드래프트 전날 짐을 정리해 집에 택배를 부쳤다. 이를 지켜본 익명의 관계자는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정말 너무한 처사다. 한 번 잘못을 저질렀다고 선수를 내쫓는 구단이 어디 있나. 히어로즈 창단 때부터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 친구들이다. 그동안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가족을 강조하며 인색하게 굴었던 구단이라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양보를 거듭했던 선수들에게 이럴 때만 프로를 강조할 텐가.”

그러나 음주 사고는 크나큰 중죄다. 안이한 시각이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이는 그동안 구단들의 다소 관대했던 대처가 낳은 잘못된 풍토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넥센은 한편으로 전력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김사연을 포함한 내야수들의 대거 이탈로 큰 치명타를 입었다.

박병호, 서건창, 강정호, 김민성으로 이어지는 넥센의 내야 선발라인업은 9개 구단 가운데 최고로 손꼽힌다. 마땅한 대체자원은 없다. 특히 유격수 쪽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석훈마저 NC로 이적해 강정호가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관련해 강정호는 “모든 경기를 끝까지 뛰다 보니 체력적으로 적잖게 힘들었다. 휴식이 조금 주어졌다면 정규시즌 막판 타격감을 잃지 않았을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넥센은 지난 신인지명회의에서 유격수 임병욱을 1차 지명으로 데려왔다.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관계자는 “아직 2군에서도 뛸 수준이 아니다”라고 했다. 함께 훈련을 했던 한 선수도 “신현철이나 김민우보다 많이 떨어진다”라는 냉정한 평을 내놓았다.

임병욱의 수비 자세를 교정 중인 염경엽 감독[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최근 넥센 선수단은 다소 우중충하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선수들이 이적한데다 연봉협상을 앞뒀기 때문이다. 이미 김민성 등은 1차 협상을 갖기도 했다. 박병호의 5억원 이상 계약설이 퍼지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크게 가라앉았다. 한 선수는 “몇 안 되는 특급 대우에 구단의 씀씀이가 커 보일 수 있겠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선수는 “구단이 주는 대로 받을 생각이다. 매년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이번엔 그냥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선수는 “왜 선수들만 구단의 고충을 헤아리고 양보해야 하나. 인상 기회를 놓쳐 매년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이젠 화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늘 가족을 강조하는 구단인데, 이젠 아버지와 같은 넓은 마음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넥센이 넘어야 할 산은 하나 더 있다. 흐트러진 선수단의 분위기를 바로잡는 일이다. 그 짐은 고스란히 염경엽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가 떠안을 것이다. 올해 이상의 성적을 겨냥하는 염 감독에겐 그야말로 크나큰 부담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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