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전격 강행하면서 한일 양국 관계가 수렁에 빠졌다. 일본의 현직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 이후 7년4개월 만이다. 한일 고위급 당국자 간 협의와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당분간 열릴 수 없게 됐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은 일제히 "시대착오적 행위"라며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그간 이웃나라들과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 전범들을 합사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정부 대변인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아베 총리가 이러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그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한일관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협력을 근본부터 훼손시키는 시대착오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어 "일본이 진정으로 국제평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한다면 과거 역사를 부정하고 침략을 미화하는 그릇된 역사인식에서 벗어나 군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고통을 겪은 인근국과 그 국민들에게 철저한 반성과 사죄를 통해 신뢰부터 구축하라"고 촉구했다.

김규현 외교부 1차관도 이날 오후 쿠라이 다카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김 차관은 "아베 총리의 행동은 역사적 추세를 거스르고 한일관계의 발전을 바라는 두 나라 국민의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 역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맹비난했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역사 정의와 인류의 양식에 공공연히 도전하는 행위"라면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 침략전쟁의 정신적 도구이자 상징이며, 아베 총리가 참배 배경으로 '평화·번영'을 거론한 것은 양봉음위(겉과 속이 다름)"라고 지적했다.

관영 신화통신 등은 중국 외교부가 이날 일본 외무성에 강력히 항의했으며 왕이 외교부장이 기테라 마사토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했다고 전했다.

미국도 "실망스럽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일본 주재 미국대사관은 26일 오후 공식성명을 통해 "일본은 미국의 소중한 동맹국이자 친구"라고 전제하면서 "일본이 이웃국가들과의 긴장을 악화시킬 행위를 한 것에 실망한다"고 밝혔다.


야스쿠니 신사는 동아시아를 전쟁의 참화로 몰고 간 도조 히데키를 비롯, 징병·징용·공출 등 각종 수탈통치로 한국 민족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긴 고이소 쿠니아키 조선 총독 등 전쟁범죄자들을 합사한 반역사적 시설물이다.

아베가 정권 출범 1주년을 맞아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한 데는 평화헌법 개정 등 우편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아베는 지난 1차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 당시에도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못한 것을 "통한"이라는 망언을 한 바 있으며 지난 10월17~20일의 야스쿠니 추계 예대제 때 참배 대신 내각 총리대신 명의로 '마사카키'로 불리는 공물을 봉납, 한중 등 주변국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날 아베는 야스쿠니 참배 후 "한국, 중국민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는 말로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영식 기자 gra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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