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한신(韓信ㆍ?~BC 196)은 장쑤성 회음현 출신으로 한 제국 건국에 크게 기여한 명장이다. 고조 유방을 도와 항우를 격파하고 한 왕조를 창건한 개국공신이었다. 그러나 토끼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처럼 한나라를 세우는데 분골쇄신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참혹한 죽음이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 끼니를 건너 뛸 정도로 빈한하였다. 마을에서는 거렁뱅이에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항우가 반진(反秦) 기치를 내걸고 거병하자 기꺼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신분이 미천한 까닭에 제대로 된 지위를 얻지 못하고 한직으로 전전하였다. 거만하고 자존심 강한 귀족의 후예인 서초패왕 항우의 눈에는 그는 그저 범용한 무장일 따름이었다. 적지 않은 건의를 하고 많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허사였다. 한신은 "아무리 건의를 해도 항우는 받아주지 않았소. 아무리 계책을 내놓아도 써주지 않았소. 내 뜻은 실현될 수 없었소"라고 비난하였다. 유방에게 몸을 의탁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이 결정이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한신은 그야말로 비견될 수 없는 군사전략의 천재였다.
　
유방도 처음에는 한신을 크게 중용치 않았다. 그러나 소하의 강력한 건의에 따라 최고사령관으로 발탁하였다. 소하는 그를 나라 안에서 비길 자가 없는 국사무쌍(國士無雙)한 인재로 평가하고 천하를 다투고 싶다면 군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방의 군대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여 한ㆍ위ㆍ조 등 주변국을 하나씩 격파하였다. 항우와의 해하 전투에서는 30만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그를 사지에 몰아놓아 결국 오강 앞에서 자결케 만들었다.
　
한신이 해하 전투에 참여하기 전 당대의 논객인 괴통은 천하를 삼분하는 계책을 내놓았다. 괴통은 그에게 "천하를 삼분해서 정족(鼎足)하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신이 유방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자 괴통은 "용맹과 모략이 군주를 떨게 하는 자는 위태로우며, 공훈이 탁월한 사람은 칭찬받지 못한다"며 그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가 천하삼분의 계책을 채택했다면 역사의 물줄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유방은 천하통일 후 한신의 군대를 빼앗고 초왕으로 임명하여 세력을 약화시켰다. BC 201년 그가 모반했다는 밀고가 들어왔다. 자신의 결백을 위해 몸을 숨겨준 장군 종리매의 목을 바쳐 충성을 서약하였다. 유방은 용서하되 초왕에서 회음후로 강등시켰다. 자신의 지휘를 받던 번쾌, 주발, 관영 등과 동격이 된 셈이다.
　
BC 197년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고 고조는 친정하였다. 그는 진희는 토벌되었으니 진압 축하를 위해 입궐하라는 거짓 명을 받고 궁에 들어갔다가 참살되었다. 고조비 여태후와 재상 소하의 계략에 빠진 것이다. 일개 아녀자의 속임수에 목숨을 잃었다. "나는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이것이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죽을 때 남겼다는 말이다.
　
한신은 어떻게 그리 쉽게 목숨을 잃었을까. 첫째로 유방이 자신의 군사적 천재성을 중시하며 중용한 것이지 인간 자체를 신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다.
　
"유방은 나에게 상장군의 지위를 주고 내 의견을 잘 들어줬다. 때문에 죽더라도 배신할 수 없다"는 말은 모반할 마음이 없음을 잘 보여준다. 둘째로 그는 개인적 은원 관계를 중시했지 섬세한 정치적 감각이 결여돼 있었다. 정치는 철저히 세력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냉혹한 정치 논리를 잘 몰랐다. 한마디로 그는 군사적 천재였을 뿐 정치적으로는 무능하였다. 괴통이 한신에게 "화의 구원은 탐욕이고, 인심을 헤아리기가 정말 어렵다"고 유방을 경계하라는 말을 전했지만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유방에게는 항우 멸망 후 한신은 제2의 항우일 수밖에 없었다. 공적 재능이 자신을 압도하는 한신은 눈엣가시였다. 천하를 둘이 공유할 수는 없는 법. 명철보신의 처세로 위기를 넘긴 소하, 천하통일 후 미련 없이 관직을 떠난 장량과는 달리 한신은 권력에 대한 애착 때문에 결국 화를 자초했다. 영웅의 슬픈 말로가 아닐 수 없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