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공약 文만 했나"…정치권에 ‘작심발언’한 김동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등 종합감사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을 문재인 대통령 혼자만 했나. 이름을 대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유승민 대표 외 다른 후보들도 똑같은 말을 했다. 기초연금을 하위 70%에게 30만원씩 준다는 것도 문 대통령 공약이지만 홍준표 당시 후보도 같은 공약을 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작심하고 여·야 정치권에 대한 비판 발언을 쏟아냈다. 정치권이 허황된 담론과 프레임 싸움에 휘말려 제 역할인 ‘타협과 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념·진영을 뛰어넘어 협치를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이날 여의도 CCMM 빌딩에서 열린 ‘상생과 통일포럼’에 참석, ‘두 개의 길 한 개의 선택’이라는 기조강연을 통해 “타협과 조정의 슬기를 찾아 개혁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부총리는 여당과 야당에 따라 정책에 대한 입장이 너무 쉽게 바뀐다며 여당과 야당을 모두 비판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거나 하위 70%에게 기초연금 30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은 문재인 대통령뿐 아니라 다른 당 후보들도 내걸었던 공약이라는 것이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원격 의료, 담뱃값 인상 등의 정책을 언급하며 “과거 한 당에서 찬성했다가 반대로 돌아섰거나, 거꾸로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라며 “여야를 막론하고 찬성했다가 입장이 바뀌면서 반대하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정책 총괄 타워로서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여당과 야당의 입장 때문에 정책 운용이 어려운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김형준 명지대 교수의 저서에 실린 ‘한국정치 10무(無)’를 인용해 “정치리더는 있는데 정치리더십은 없고, 선거는 있는데 승복은 없고, 정치공학은 있는데 정치철학은 없고, 허황된 담론만 있고 정책은 없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ECR 회의실에서 공유경제 기반 조성을 위한 분야별 플랫폼 서비스 활성화를 주제로 열린 경제 라운드테이블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정치권의 프레임 싸움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김 부총리는 “기재부는 나흘간 국정감사를 받는데, 시종일관 최저임금과 소득주도 성장, 단기 일자리 등 거의 같은 질문에 노출됐다”며 “정책 내용으로 건전하게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특히 최저임금에 대해 ‘기승전 최저임금’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도 여러 차례 속도조절 이야기를 했는데 모든 논리를 기승전 최저임금으로 몰고 가는 것은 프레임”이라며 “최근 발표한 단기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도 ‘통계분식용 일자리’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고 꼬집었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의 프레임 정치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대표적인 게 ‘재벌 위주 성장’이다. 김 부총리는 “어떤 분들은 과거 재벌위주 성장을 했다고 말하는데 저 말 자체도 프레임”이라며 “혁신성장 하는데 중소기업은 기고(그렇고) 대기업은 아니고 하는 것에 대해 저는 좀 불쾌한 마음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게임 이론의 ‘죄수의 딜레마’ 와 비슷한 일이 정치권에도 일어나고 있어 타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경제의 숙제를 풀기 위해선 정치권의 타협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사이의 갈등이다. 그는 “두 가지는 같이 가야 하는 축”이라며 “소득주도 성장을 강조하시는 분은 혁신성장을 했을 경우 우리가 지금 고치려고 하는 구조적 문제가 심화될 거라고 하고, 반대로 혁신성장만을 강조하는 분은 소득주도 성장은 퍼주기·재정파탄이라고 비판한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양대 정책을 어떤 비중으로, 속도로 할 것인지에 대해 정교한 판단과 정책적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 부총리는 좌우에 상관없이 갈등을 뛰어넘는 정치력이 필요하다며 이스라엘의 ‘연정’을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또 경제 구조개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닥칠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는 비전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많은 구조개혁을 통해 (선진국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필연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기간이 필요하다”며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긴 시계와 비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 나온 “정치는 개혁가와 선동가가 경쟁하는 장”이라는 표현을 인용하며 “개혁과 선동 중 선택하는 건 정치권의 몫”이라며 “거기서 타협과 조정의 슬기를 찾아서 개혁의 길로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도 정치권의 몫”이라고 말했다. 선동 대신 개혁을 택하려면 타협과 조정이 필수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국감에서도 ‘위기 아니냐’고 계속 말하는데,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고 하면 자기예언적인 게 나올 수 있다”며 “과거에 비하면 이번은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가 미흡한 점도 있지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반드시 극복할 과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