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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상장사 사채시장에 자금구걸 나섰다

최종수정 2009.11.20 09:34 기사입력2009.11.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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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형수 기자]찬바람 부는 평일 오전 명동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간간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곤 했으나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상장사에서 주식담당 업무로만 10년 이상 잔뼈가 굵은 P씨는 오랜만에 명동을 찾았다. 평상시 업무시간 절반은 회사에서, 나머지 시간은 여의도에서 보내곤 했으나 회사가 자금난에 허덕이면서 단기 사채를 빌려볼 요량으로 명동을 찾은 것.

P씨는 "매년 겪는 것이지만 연말이 다가오면 감사의견 걱정에 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다"며 "직장생활 초창기에는 감사기간에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부족한 부분은 연말에 다 메꿔놓는다"고 말했다.
한해 농사가 잘 안돼서 자본 잠식 우려가 발생할 경우 미리 대책을 마련한다는 설명이다.

P씨는 명동지리에 익숙한 듯 골목길을 지나 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린 후 다시 만난 P씨는 얼굴이 어두웠다. 담보로 내세울 만한 지분이 적었던 것이 역시나 자금 조달에서 발목을 잡았다.
"회사에 들어가서 경영진과 상의한 후에 다시 찾아야 할 것 같다"며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슷한 이유로 명동을 찾는 상장사 직원들이 늘고 있다. P씨가 상담하고 있던 시간에도 몇몇 사람이 같은 건물을 드나들었다.
코스피 상장업체 K사 대표도 이날 명동을 찾았다. K사는 그마나 사정이 좀 나아서 K사 지분이 아닌 다른 담보를 들고 자금을 융통하고자 했다. 일이 잘못돼서 반대 매매가 나올 일은 없겠지만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이러한 K사의 사정을 모르는지 시장에서 K사 주가는 최근 상승세다. 상장주식수 대비 단일계좌 거래량 상위 종목으로 지정된 것을 보면 내부 정보에 밝은 누군가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듯한 인상도 풍긴다.

최근 소수지점·소수계좌 거래집중 종목으로 지정된 R사 관계자도 자금 조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3·4분기 까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모두 적자인 것으로 집계되면서 제도권 안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사채라도 융통해볼 요량으로 명동을 찾았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부실 상장사들이 명동을 찾은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증시 폭락을 겪으면서 명동의 자금줄들이 까다로워지기는 했지만 금융권에서 자금 조달이 힘든 상장사들은 명동의 문을 두들길 수 밖에 없다.

차입금 대비 1.5배 이상의 담보를 요구하긴 하지만 상장폐지 당하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을 한 일부 상장사는 해가 바뀌기 전에 자금을 조 달하기 위해 부지런히 명동 바닥을 돌고 있다.

문제는 언발에 오줌누는 격으로 명동 자금을 끌어들여 유상증자에 성공하거나 단기 차입을 통해 감사 의견 적정을 이끌어낸다 해도 회사 본질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요행수로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빠져나간다 해도 실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증시 전문가들은 특히 연말에는 주가 동향보다는 실적에 초점을 맞추고 투자 종목을 선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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