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


이 땅의 많은 미디어들은 샤넬과 특정 면세점의 불화, 명품 브랜드의 기습적 가격 인상 소식을 전한다. 모델별로 인상 가격폭까지 제시하며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알고 이익만 챙기는 브랜드가 얄미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필수품도 아닌 명품 가격을 모두가 알아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명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 ‘나도 갖고 싶다’와 ‘가방 하나에 몇천만원? 지금 아프리카 아이들이 배를 굶고 있다고.’ 아무 생각 없다는 의견도 추가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느 쪽인가?

샤넬 가방은 그 자체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지난해 인턴 사원에 지원한 대학교 3학년생 K를 만난 자리. 기자가 K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들고 온 샤넬 가방에 관해서였다. 그것이 짝퉁이라면 허영심이 많은 성격이라 일을 열심히 안할 것 같았다. K는 면접이라 최대한 정장을 입었고 그래서 대학 입학 때 선물받은 가방을 선택했단다. 면접 오는 대학생과 샤넬의 조합은 어색했다.

최근 자주 쓰이는 용어로 ‘위버 럭셔리’가 있다.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보통의 럭셔리가 아닌 기본 1000만원 이상인 시계, 전 세계에서 단 1％만 생산되는 캐시미어로 만드는 코트, 주문 후 기본 2년을 기다려야 하는 수제 핸드백…. ‘보다 빠르게’를 외치며 기록 경신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처럼 럭셔리 브랜드들은 ‘우리가 제일 비싸, 우리 것이 제일 특별해’를 외쳐야 직성이 풀리는 유전자 그 자체다. 보통의 삶이 이토록 특별한 브랜드와 경쟁해 살아 남을 수는 없다.

20여년의 직장 생활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을 꼽으라면 명품 가방을 구입했던 순간도 포함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값진 순간들은 ‘소유’가 아닌 ‘경험’이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고 백남준 선생과의 인터뷰, 황홀했던 피나 바우쉬 무용단의 몸짓, 황병기 선생과 나눈 동시대 예술 이야기…이것들은 중고 시장에서조차 환영받는 명품이 안겨주는 카타르시스와는 비교할 수 없다.

차, 오디오, 시계 등 기자에게도 여전히 소유하고 싶은 위시리스트는 존재한다.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저금도 한다. 그뿐이다. 저마다의 위시리스트는 달라야 한다. 그것이 꼭 럭셔리 브랜드로 귀결될 필요는 없다. 코코 샤넬이 얘기하지 않았던가? 명품은 필수품이 끝나는 데서 시작하는 필수품이라고.
필수품의 범위를 다시 정리할 때다.






박지선 기자 sun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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