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한국영화계에 올해 추석 극장가는 흉작이었다. 사실상 최후의 승자는 추석 연휴를 노린 영화가 아니라 8월 개봉한 <최종병기 활>이었다. <가문의 영광4-가문의 수난>(이하 <가문의 영광4>)은 온갖 악평 속에서도 13일간 20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으나 추석 연휴가 끝난 뒤 <최종병기 활>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래도 <가문의 영광4>은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영화들은 적자를 면하기 힘든 상황이다. 19일까지 송강호, 신세경 주연의 <푸른소금>은 72만 명, 권상우, 정려원 주연의 <통증>은 59만 명, 차태현 주연의 <챔프>는 45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올해 추석 극장가는 연휴가 짧았던 2009년보다 관객수가 많았고 징검다리 9일 연휴였던 지난해보다는 적었다. 전체 시장 규모는 예년과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올해 추석을 기해 개봉한 한국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최근 몇 년간 기록 중 최악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엔 <시라노; 연애조작단>가 300만에 근접한 관객을 모았고 <무적자>와 <해결사>가 150만 명을 넘겼다. 2009년엔 <내 사랑 내 곁에>가 250만 명을 넘겼고, <불꽃처럼 나비처럼>이 170만 관객을 모았다. 2008년엔 <신기전>이 300만을 돌파했고, <영화는 영화다>가 15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올해는 <가문의 영광4>가 유일하게 100만 관객을 넘은 영화가 될 공산이 크다. 그마저도 ‘반짝’ 흥행에 그칠 듯한 상황이다. 의외의 복병이었던 <최종병기 활>이 승승장구하면서 정작 추석 한국영화들은 극장가에서 실패했다.

추석 성수기를 노린 한국 영화들의 실패는 결과론적이지만 배급사들의 실패한 전략을 먼저 이야기할 수 있다. 명절 극장가는 유독 가족 관객이 많고 자세한 정보 없이 극장을 찾는 관객이 많다. 영화의 장르 및 콘셉트와 출연진만으로 관람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시기보다 입소문의 영향력이 약하다. 1분짜리 예고편, 포스터 한 장만으로도 관객을 유인할 수 있는 시기다. <가문의 영광4>가 개봉 초 쏟아진 악평에도 연휴 기간 내내 흥행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배급사 NEW는 시즌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가문의 영광> 프랜차이즈를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전략에는 성공했으나 내용물은 부실했다. 완성도를 떠나 ‘웃음’이라는 핵심을 공략하는 데는 실패했다. 연휴가 끝나고 관객수는 급감했다.

<푸른소금>과 <통증>, <챔프> 역시 명절 시즌이 요구하는 특성을 충분히 갖춘 영화라 말하긴 힘들다. <푸른소금>은 장르적 정체성이 불분명한 데다 남녀노소가 편하게 볼 수 있을 만한 대중성이 부족했다. <통증>은 뚜렷한 스토리라인이 없어 흡인력이 부족했으며 명절에 보기엔 너무 어둡고 무거운 영화처럼 비춰졌다. <챔프>는 가족영화치곤 너무 장황하고 길었다. 지난해 유사한 소재의 <그랑프리>가 흥행에서 실패한 점도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 작품 모두 추석 시즌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멀티플렉스 체인 CJ CGV의 이상규 홍보팀장은 올해 추석 연휴가 여름 성수기와 곧바로 연결되는 한 시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추석 연휴 한국영화들의 흥행 실패는 <고지전>, <7광구> 등 여름 개봉작들의 저조한 성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상규 팀장은 “<푸른소금>, <통증>, <챔프>는 배급 시기와 분위기가 맞지 않는 영화들이고 사실상 9월 비수기를 노려서 나온 영화들로 볼 수 있다”며 “배급사들은 여름부터 이어질 대작들이 이 영화들과 함께 추석 시즌에 걸릴 것으로 내다봤을 텐데 그 전략이 실패한 것”이라고 흥행 결과를 풀이했다.

10 아시아 글. 고경석 기자 k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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