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지마 히데토시(西島秀俊)
a. 일본의 배우. 1971년생. 도쿄 액터즈 스튜디오 1기생 출신으로 1993년에 방송된 후지TV 드라마 <아스나로 백서>에서 동성애자 마츠오카 준이치로 역으로 주목을 받음.
b. 2011년 12월 종영한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의 주인공. 김태희의 일본 진출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이 작품에서 쓸데없는 정의감으로 의도치 않게 사고에 휘말리고, 늘 투덜거리면서도 한류스타 한유나(김태희)에게 휘둘리는 경호원 나미키 코헤이를 연기.
c. 지난 2월 9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컷>의 주인공. 이란 출신의 아미르 나데리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서 죽은 형이 남긴 빚을 갚기 위해 인간 샌드백이 된 슈지 역을 맡음.

연관어: <봄, 바니즈에서>(<春、バ-ニ-ズで>)
a. 2006년 2월 일본 위성방송 WOWOW에서 방송된 단막극.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국내에서는 <거짓말의 거짓말>로 출간)을 영상화. 대도시에서 이상적인 부부라는 말을 들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에게 찾아 온 일탈의 욕망을 절제된 영상으로 그려낸 작품
b. 일본의 거장 고(故) 이치카와 준 감독이 연출하고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주인공 츠츠이를 연기한 작품.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이치카와 준 감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토니 타키타니>(2004년)에서도 내레이션을 맡았음.



“나는 존재하고 있던 건가요? 정말 제대로 존재했던 건가요?” 쿠로사와 키요시 감독의 영화 <인간합격>(1999년)에서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연기한 요시이는 이렇게 묻는다. 교통사고로 혼수상태로 있다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눈을 뜬 요시이는 몸만 컸을 뿐 여전히 사고 당시인 14세에 머물러 있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이다. 니시지마가 첫 주연을 맡아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간 세상과 불화하는 청년을 연기한 이 영화의 잔상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를 감싸고 있다. 그래서 때로 그를 보면 똑같이 되묻고 싶어진다. “당신, 정말 제대로 존재하고 있는 건가요?”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만 존재하는 남자.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에서 만나는 니시지마는 어쩐지 그런 이미지였다. 니시지마는 20년이란 긴 세월을 감안해도 놀라울 정도로 길고 빽빽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한다. 이는 그가 감독이나 스태프, 함께하는 배우만 좋다면 아주 작은 단역이라도 흔쾌히 출연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많은 감독들이 꿈과 현실, 순수와 잔인함의 모호한 경계에 서서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그 얼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물기 하나 없는 건조한 사막 같은 니시지마의 얼굴에선 쉽사리 욕망을 읽어낼 수 없다. 그래서 쿠로사와 키요시, 키타노 타케시, 이치카와 준 같은 일본의 거장들이 그 무욕의 얼굴에 자신들의 욕망을 덧입혀 왔는지도 모른다. 특히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을 이치카와 준 감독이 영상화한 <봄, 바니즈에서>는 그런 니시지마의 이미지를 가장 탁월하게 포착하고 활용했다. 니시지마가 연기한 30대 샐러리맨 츠츠이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내일과도 다르지 않을 고요하고 평온한 오늘을 매일 매일 쌓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두고 온 손목시계의 행방을 찾아 출근길에서 벗어나 닛코로 향한다. <봄, 바니즈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 일탈의 이유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저 니시지마의 건조하고 무심한 얼굴만으로도 좀처럼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는 그 시간이 설득된다. 이 배우의 공허한 눈빛과 무표정은 때로는 한없이 순수한 심성을,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때로는 바스러질 듯 좌절된 마음을 담는다. 하지만 어쩐지 차갑지 않다. 그건 니시지마의 얼굴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껴본 적 있는 일상의 불안감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그것 자체로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마치 요시다 슈이치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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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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