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삼성가 장남의 유산상속 문제로 불거진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버지인 이맹희씨의 소송전이 삼성측의 이재현 CJ그룹 회장 미행으로 그룹간 갈등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CJ그룹은 삼성측의 이번 미행에 대해 "국내 최고 기업인 타 기업 회장, 그것도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장손에 대한 미행 및 감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재계는 CJ그룹측이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CJ그룹측은 이맹희씨의 상속재산 반환청구 소송 당시에도 그룹과는 관련없는 일이라며 의미를 축소했지만 이번에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손'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우리 사회 깊숙히 뿌리 박힌 장자에 대한 감정을 자극, 여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이번 미행사건을 통해 이재현 회장은 물론 상속재산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맹희씨도 장자로서 대접을 못받았다는 점을 부각해 향후 전개될 상속권 소송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동안 CJ그룹내에서는 장자소외론이 팽배해 있었고 이로 인한 삼성그룹과 크고 작은 갈등이 지속돼왔다.

고 이병철 선대 회장 사망 이후 장남 이맹희씨는 자신의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 회장 자리를 물려 받아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지만 외면당했다.

이맹희씨가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것도 장자로서의 대접을 받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씨는 이병철 선대 회장이 차명으로 갖고 있던 재산을 실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이 이를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독차지했다고 주장했다.

상속재산 반환청구 소송은 개인적인 송사지만 양쪽 그룹과도 무관하지 않다. 범 삼성가로 소송이 확대될 경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맹희씨가 개인적으로 자금이 필요해 소송을 제기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예전 이병철 회장 사후 차기 삼성전자 회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흔들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이씨의 소송 직후 삼성과 CJ는 '개인적인 송사'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이번 미행사건이 터지면서 그룹간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CJ그룹측이 이번사건에 대한 삼성측의 해명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 등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며 이에 불응할시 즉각 소송에 나설 계획임을 천명했다. 삼성측은 CJ가 요구한 관계자의 처벌 및 사과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 따라서 두 그룹간 법정 공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씨가 이번 소송전 상속권자인 다른 형제자매들과 논의를 거쳤다는 루머도 있다. 신세계 그룹은 이씨의 소송 직후 "소송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 놓았지만 그룹 차원의 입장일 뿐 이명희 회장이 소송에 참여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맹희씨가 소송에 나서기 전 이명희 회장, 이숙희씨(구자학 아워홈 회장 부인) 등 상속권자들과 논의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단순히 재산 상속이 아닌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범 삼성가가 소송전에 돌입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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