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근 한국베어링판매협회장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국민법제관



임진년 새해들어 계속되는 대기업들의 소상공인 업종 침해로 계층간 갈등이 고조되는 분위기여서 마음이 답답하다. 이런 와중에 포퓰리즘 성향의 정치성 공약이 난무해 정치불신을 초래하고 있으니 안타까울뿐이다.

최근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카드수수료 문제만 봐도 그렇다. 구매자의 신용으로 물건을 사고 카드결제를 하면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이 부담하는 수수료는 1.2%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구, 베어링 등 산업용재를 파는 소상공인들은 보통 3.5%에서 많게는 4.5%까지 훨씬 많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은행대출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담보물건을 잡히더라도 소상공인들은 대기업(3~5% 수준) 보다 높은 6~8%의 금리를 부담해야만 한다. 물론 재정건정성 등 여러가지를 감안해 매겨진 요율이겠지만 이는 결국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점점 못살게 되는 비현실적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바로 잡아야할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 어느 정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소상공인을 비롯한 민초(民草)들의 저항은 계속될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유통산업발전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각 지자체들이 영업시간 제한이나 휴일준수 의무화 등을 강조하며 소상공인들을 위한 보호정책을 펴고자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여겨 볼 것이 또 하나 있다. 마트나 빵가게처럼 소리소문없이 소상공인들의 어머어마한 28조시장을 침해하는 것이 바로 대기업 구매대행사들이 진출해있는 MRO(소모성자재) 및 원자재 구매대행사업이다.

애초에는 자사그룹 원가 절감차원에서 시작한 통합구매방식이 타 대기업, 공기업 및 공공기관 더 나아가 중소기업 등을 상대로 구매대행을 하면서 당초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더욱이 MRO대형마트 설립 계획까지 고개를 들고 있으니 중소업체를 숨막히게 하고 있다. 옛부터 옹기종기모여 대기업 및 중소기업에 납품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수십만 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축구스타 박지성이 동네축구로 회귀한다면 그것이 득이 되겠는가? 그동안 정부의 온갖 지원정책에 힘입어 커다란 부(富)를 축적한 대기업들이 새로운 기술개발로 더넓은 세계시장을 향해 뛰어나가야 함에도 기껏 소상공인들이 모여 알콩달콩 삶을 이어가는 자그마한 시장에 뛰어들어 아옹다옹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이는 비단 대기업뿐 아니라 정부, 국회, 사회지도층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대기업이 소상공인 위주의 시장에 뛰어들 경우, 시장 진입 초기에 사업영역에 대한 조정역할을 정부나 정치권이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소상공인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아래 대목은 소상공인들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절을 할 수 있다.”

다행히 지난해 6월 중기청 사업조정을 통해 대기업 구매 대행사 상위 4개사의 자율적 합의를 도출한 일이나 11월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는 가뭄 속 단비같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앞으로도 제대로 지켜질 것으로 액면 그대로 믿는 중소상공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듯 싶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정신에 사회적 책임을 더하는 도덕적 기업문화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코노믹 리뷰 이효정 기자 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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